대다수 직업 사라진 2055년, '생산성 없는 인간들의 생존기'

[원다라의 행간읽기] SF소설이 스릴러처럼 읽히는 이유는 「소멸사회」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기술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산성을 낼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회다. 하지만 과거의 기준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를 옥죈다. 생산성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불가능한데, 생산성 있는 사람이 돼야 존중받는다."


오는 2055년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은 뭘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2055년에도 남아 있을 직업은 뭘까. '소멸사회'는 약 30년 뒤 기술에 지배당한 인류를 그린다. 아마존의 '실험'에 불과했던 '캐셔' 없는 마트는 현재 이미 보편화했다. 상류층 직업에 속했던 의사 역시 의료기기가 잘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단순 노무직으로 전락했다.

많은 직업이 사라지면서 재력가로 남지 못하거나 건재하는 직업군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땅에 발조차 붙이지 못한 채 한강의 '보트피플'로 전락한다. 대다수 보트피플을 먹여살리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질 낮은' 식재료를 사고, 사람들이 침 뱉고 오물까지 버리는 한강의 물을 걸러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필터 정도 사고 나면 간신히 정신과 약 혹은 술이나 살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이 주는 고마움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사라지게 됐다는 데 대해 어떤 의문도, 더 이상의 희망도 품지 않는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조력자살'. 문명으로 도래했던 '100세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재미(=희망)'가 없다는 이유로 100세를 누리지 않을뿐더러 조력자살이 가능한 70세가 되기만 간절히 기다린다. 현재 70세라면 퇴직연금을 받고 더러는 '인생은 60부터'라며 은퇴 후 새로운 희망을 누리는 나이다.

'소멸사회'의 주인공 노랑은 조력자살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봉사활동 중이다. 그는 조력자살을 하기 위해 나이까지 열 살이나 속인 한 '94년생' 노인(60세) 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이 일 그만두지 말고 계속해. 누구 죽을 때 손 잡고 이야기해주는 일은 절대 대체가 안 되는 일이거든. 평생 직장이 될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노랑은 여기에 착안해 '에버마인드'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된다. 인간의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인공지능(AI)이 이제 인간의 잡담을 기꺼이 들어주는 '낭비'의 방향으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은 '인간의 생산성'이 인간의 가치평가 척도로 건재한 상황에서 에버마인드가 전하는 희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점이다. 노랑은 병원장에게 "사람은 사람이기에 가치가 있다"는 말로 강변한다. 그러나 과연 생산성이 배제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낼수 있을까.

AD

2055년이라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지만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섬짓하다. 참고로 저자는 '소멸사회'에서 AI가 기자 대신 정부 정책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쓰는 기사도 보여준다. '소멸사회'가 공상과학(SF)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린 생존스릴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 (심너울 지음/그래비티 북스/1만4000원)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