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투란도트 눈물과 신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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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노래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가 지금 한국에 와서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고 있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오페라는 1926년 밀라노에서 초연한 이후 신비롭고도 보수적인 동양의 구질서를 대변해왔다. 같은 푸치니 작품으로 일본 게이샤를 그린 '나비 부인'과 함께 근대화를 주도해 앞서온 서양이 계몽해야 할 은둔과 야만의 왕조로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세계관이기도 했다.


마침 2019년 7월 여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뭔가 새로운 국제 질서가 꿈틀대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네 뮤지컬 '투란도트'로 격변하는 신 아시아 질서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번 초여름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특별공연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킬러 콘텐츠, 뮤지컬 '투란도트'는 투란도트 공주가 낸 3가지 수수께끼 이야기를 살짝 변형해놓고 있다. 원작 정답 피, 희망, 투란도트 대신 눈물, 저주, 투란도트가 들어왔다.

희한하게도 원작 아닌 한국 창작뮤지컬 버전에 와서 조금 순화시키려 변형해낸 응답 3종 세트가 동양과 서양이 서로 관여하고 다투며 바꾸고 있는 지금 새로운 체제, 국제 질서에 꼭 들어맞는 은유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수수께끼 내용 그대로 투란도트 공주 나라 중국과 나비 부인 초초상 게이샤 나라 일본은 이탈리아인 푸치니가 묘사한 그대로 피와 희망으로 점철된 구체제를 부여잡고 살아 왔다. 잔인한 광기를 서슴없이 부리는 투란도트 공주가 낸 오페라 첫 번째 수수께끼 대사를 보자.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갯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 것은? 이에 사랑을 쟁취하려 찾아온 망국의 왕자 칼라프가 답하는 정답은 희망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그 누구도 지난 날 아침 이슬과 태양 아래 반짝이는 진짜 희망을 마음껏 말하지 못했다. 굴종적인 아편전쟁에 개방한 홍콩처럼 희망은 아침이 되자 한낱 꿈이 되어 사라지곤 했다.

두 번째 수수께끼가 이어진다.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이 아니면 생명을 잃으며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르며 그 색은 석양처럼 빨간 것은? 정답은 피다. 한국전쟁도 그렇고 일제가 저지른 태평양전쟁 학살도, 그 전후로 자라난 분단이나 민주화 과정에서 흘린 피의 추억들도 결코 잊힐 리 없다.


세 번째다. 그대에게 불을 주며 그 불을 얼게 하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노예로 인정하면 왕이 되는 것은? 정답인 투란도트 공주가 연상하게 해주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현재 중국 또는 일본이다. 이들은 여전히 이웃 나라에 대해서까지도 정복자, 승리자, 군림하는 절대 왕좌라는 기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웃 한국에 수출 제재로 시비를 걸고 있는 일본 총리 아베 신조를 보면 히스테릭 얼음 공주 투란도트와 게이샤 초초상이 흡사 더블 캐스팅되어 1인2역을 하는 괴이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강력한 리더십 체제 또한 온통 진회색의 강렬한 투란도트의 무거운 실루엣으로 포개진다.


그토록 어두웠던 투란도트와 나비 부인의 영토로서 지난 200년 얼음 왕국을 견뎌온 동아시아가 이제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기 직전에 와서 한바탕 소용돌이가 회오리치고 있다. 일본이 무역으로 도발하고 한국과 북한은 여태 경직되어 있고 중국, 러시아, 인도, 홍콩, 대만, 베트남, 태국 등이 한데 모여 유럽연합(EU)처럼 뭉쳐 실험하며 창업하려는 좋은 기운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시 한 번 서구화로서 근대화를 강제 집행하는 19세기 아편전쟁과 흑선의 재방송이 편성되려 하는 찰나다. 이러한 때 대구에서 울리는 한국의 선율이 중요한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뮤지컬 투란도트 마케팅 슬로건인 '세 가지 수수께끼, 목숨은 하나'에서 새 아시아 새 질서를 포착할 수 있다. 그것은 눈물과 저주 그리고 사랑으로서 투란도트다. 너무 흔하지만 오직 투란도트에게만 없는 눈물이 오늘날 스트롱맨 콤플렉스 최대 피해자가 된 중국과 일본에 적용된다. 남 몰래가 아니라 모두가 알 만큼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진짜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정답인 저주도 마찬가지다. 증오심으로 가득 차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투란도트를 괴물로 살게 하는 저주는 결국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한다. 오직 복수와 정복, 파괴와 쟁취만 갈구하는 투란도트는 원작 오페라 작품처럼 더 많은 피를 부를 뿐이다.


옛 질서를 말하는 희망과 피, 갇힌 투란도트를 떠나보내고 한국 창작 콘텐츠가 새로 발신한 눈물과 저주, 그 너머 진정한 사랑을 새 아시아 새 질서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백년이 지나 푸치니가 볼 때 투란도트와 나비 부인이 마침내 지독한 저주에서 벗어나 눈물을 닦은 사랑으로 와 닿는 새 아시아 새 질서가 환하게 보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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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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