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이사라 마냥 무시할 게 아니다. 집단지성이니 삶의 지혜니 하는 거창한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렇다. 정치에 관해서는 특히 귀 기울일 만하다. 평범한 이들의 한마디가 석학이나 평론가보다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나아갈 바를 짚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란 것이 본디 민심을 바탕으로 하기에 누구나 한마디 보탤 수 있는 만만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며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등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용어들이 쉼 없이 등장하며 정치 교육을 흠뻑 시키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를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남덕현 지음ㆍ빨간소금)'다.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로 따뜻하면서도 뭉클한 정경을 그려낸 이 에세이집에 '시골평론'이란 챕터가 있다. 시골 다방에서 정치를 소재로 한 촌로들의 설왕설래가 무릎을 치게 한다.
"슨거는 안 혀야 써?"라 묻는 친구에게 한 노인이 선거 무용론을 편다.
"허믄 뭐헌댜? 저것덜 뽑아놔봤쟈 다 비광이여, 비광! 서루 잡아먹을드끼 으르렁그르렁허는 거 같어두, 겔국 서루 붙어먹으야 삼 점 나는 비광들이라니께! 허, 쌍눔의 화투판!"
이 대목을 보면서 어째 '패스트트랙 사태'가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안 등을 신속 처리하겠다고 나서자 여야 간 거센 드잡이질이 벌어졌다. '빠루'까지 등장해 '동물국회'란 개탄이 나오고 자유한국당은 농성, 삭발 투쟁에 이어 거리로 나섰다. 그 후폭풍으로 지난 7일 현재 14건, 164명이 검찰에 고발됐단다. 그중 여야 국회의원이 97명이라니 자칫 전체 의원 300명 중 3분의 1이 검찰 조사를 받을 판이다.
그러나 신경 쓸 것 없다. 고소ㆍ고발은 예전에 그랬듯이 시나브로 잊히고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타협이 이뤄질 터다. "으르렁그르렁허는 거 같어두, 겔국 서루 붙어먹을" 거란 이야기다. 패스트트랙 사태가 벌어진 지 불과 2주 만에 의원 정수 확대론이 슬슬 나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미 정치 풍향에 민감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8일 '군불'을 지폈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 10대 경제대국 중 우리나라가 국회의원 수가 가장 적다며 30석 정도 증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농어촌 지역을 제대로 대변해야 한다거나 국민 정서도 이를 이해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예상하긴 했다.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은 채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역구가 축소돼야 한다. 이는 정당 차원에선 이득이 될지언정 의원 개인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제 밥그릇을 줄이는 데 찬성할 의원이 있을 리 없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슬그머니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야합' 가능성이 크다.
한데 의원 수를 늘리면 국민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자격시험이나 후보 청문회가 없으니 유권자는 어떤 이가 무슨 기준으로 비례대표가 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라 이런 의문은 더 커진다. '거수기'를 많이 뽑는다고 국민 살림이 피는가. 패스트트랙에 함께 태워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이견을 낸 민주당의 금태섭ㆍ조응천 의원에 대해 당 안팎에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 된다"는 막말이 쏟아지는 형편인데 숫자만 늘리면 뭐하나.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정의로워지는가. 단지 여당이란 이유만으로 인사청문회에서 부적절한 인사에 대해 눈감고, 5ㆍ18민주화운동 관련 망언을 해도 자기 식구라고 솜방망이 징계로 그치는 마당에.
다시 '한 치 앞도 모르면서'의 한 대목이다. "이번 슨거이서 워디를 밀겄다는겨?"란 질문에 대한 답이 요즘 말로 '사이다'다. "내 세금으루 판돈 걸구선 마냥 고 허는 꼬라지 보는 것두 환장허겄는디 옆이서 누구 이겨라, 누구 져라 응원까장 혀줄 일 있남?"
이게 요즘 국민 대다수의 심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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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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