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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4차 산업혁명과 비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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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주말, 한국비서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해 주제 강연과 공개 토론의 패널을 맡았다. "비서라는 직업은 미래에도 존재할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학회 측은 필자의 인사 경험과 교육 경험을 통해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비서학'은 한국전쟁이 막바지였던 1952년 모 대학 영문과의 부전공으로 시작돼 1968년에 독립 비서학과가 개설, 1992년에는 '비서학회'가 발족돼 학술적 면모까지 갖췄다. 1990년대 후반에는 30여개 관련 학과에서 3000명 이상의 신입생을 선발한 전성기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의 후폭풍과 인터넷의 발달로 전환기를 맞아 현재는 20여개 관련 학과에서 500명 전후의 신입생을 뽑는, 전성기 대비 30% 정도로 위축된 상태다. 더욱이 제4차 산업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인공지능(AI) 비서'는 새로운 진앙이 돼 그 위기의 실체와 대응 방안이 학술대회의 주제가 돼 있었다.

비서의 역사는 만만치 않다. 중국 '한서'에는 궁중장서 관리 기관인 '비서성'이 존재했고, 직책으로는 촉의 '비서령', 위의 '비서감' 등이 있었다. 조선 시대 '승정원'과 '도승지'의 존재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중세 이후 라틴어 '세크레타리우스'에서 유래한 비서가 귀족이나 부호,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본가와 기업가를 보좌하는 전문직으로 존재했다.


또한 비서는 구소련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에는 국가수반인 '서기장(General Secretary)'으로 존재하고, 미국의 국무부 장관과 유엔(UN)의 사무총장 역시 비서(Secretary)란 타이틀을 사용한다. 우리의 현실 세계에도 대통령비서실,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 비서의 역할은 중대하고, 민감하게 현재 진행형 직무로 건재하다.


이와 같이 비서는 개인이나 조직, 나아가 국가까지를 통괄하고 보좌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이 중 정부나 대기업 기조실과 같은 비서의 역할은 '통치비서(Governing Secretary)'로 구분돼 현재의 비서학 영역과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수행비서나 전문비서 등 '일반비서(Usual Secretary)'의 역할은 아직 그 필요성과 전문화의 여지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에도 비서직의 커리큘럼이나 교재를 훑어보면 전화 응대나 의전, 일정 관리 같은 20세기적 역할과 낡은 체크리스트들로 가득하다. 또한 비서직 전반이 여성의 역할로 이어져왔으며, IT에 약하고 혁신에 소극적이었던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물론 시대 변화에 능동적인 대학ㆍ학과도 있음은 잘 알고 있다.


미래의 비서 역할은 '휴먼 스킬' '소프트 터치' '사람 대 사람'의 업무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의 업무가 가중될수록 인간 비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오너 리스크' '이미지 관리' '소통의 문제' 또한 비서의 핵심 역할이 될 것은 자명하다.


이뿐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비서직에 큰 위협 요소인 IT에 대해서도 오히려 정면 승부를 해나가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가 약한 많은 CEO나 임원들의 IT 튜터가 돼 스케일이 다른 그들의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비서의 업무를 시스템화하는 과제가 비서들에게 있다.


따라서 학회는 비서직에 대한 바른 홍보와 IT 교육의 가속화, 아울러 비서직의 향후 전문성을 법률, 의료, 회계 비서와 같은 전문직의 보좌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특화하거나 전공 간의 융합도 연구해야 한다. 비서학 전공자의 새로운 직업ㆍ진로 개척과 취업 후 장기 성장에 대한 연구도 제안하고 싶다.


이제 인터넷 뉴스에서 '비서'를 검색하면 더 이상 청와대나 기업, 드라마 얘기 일색이 아닌 비서학의 미래 대비 얘기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임호순 충남삼성학원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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