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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철거한 일제의 '총독부' 건물, 대만은 왜 계속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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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만총통부, 1919년 지어진 대만총독부 건물 그대로 사용
조선과 달리 문관통치, 국민당 정부 탄압에 오히려 일제강점기가 미화


오늘날 대만총통부로 쓰이고 있는 옛 일제의 대만총독부 건물 모습. 우리나라에서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건립됐다.(사진=대만총통부 홈페이지/www.president.gv.tw)

오늘날 대만총통부로 쓰이고 있는 옛 일제의 대만총독부 건물 모습. 우리나라에서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건립됐다.(사진=대만총통부 홈페이지/www.president.gv.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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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시내를 관광하다보면, 우리의 청와대 격인 총통 관저로 쓰이는 '대만총통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높은 중앙탑이 인상적인 이 건물을 다른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면 '날일(日)'자 형태로 만들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런 형태로 만들어졌는지는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보면 바로 추정이 가능해진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한참 3.1운동이 벌어졌던 1919년 세워졌다. 당시 대만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고, 이 건물은 원래 일제의 대만총독부로 세워진 건물이었다. 1926년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 역시 이 대만총독부처럼 날일자 형태로 만들어졌다.

형태는 비슷했지만, 두 총독부 건물의 운명은 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후 지난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고 경복궁 복원에 나섰지만, 대만은 여전히 이곳을 총통부 건물로 사용한다. 대만 내에서는 총통부 건물을 이전하자는 이야기는 있지만, 철거여론은 아직까지 없었다. 오히려 야경이 멋진 관광명소이자 근대 문화재로 소개돼있다.


위에서 바라보면 날일(日)자 모양으로 보이는 대만총독부 건물. 이 디자인은 후에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울 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사진=두산백과)

위에서 바라보면 날일(日)자 모양으로 보이는 대만총독부 건물. 이 디자인은 후에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울 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사진=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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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분노를 유발시키며 지우고 싶은 치욕적인 '식민잔재'를 대만에서 이처럼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대만의 일제강점기를 살펴봐야한다. 대만은 우리보다 일제강점기가 15년 길었다. 대만은 공식적으로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완전 점령하면서 1945년까지 반세기동안 식민통치를 겪었다. 식민통치가 길었던만큼 우리나라보다 반일감정이 더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대만의 반일감정은 우리나라만큼 심하지 않다.


물론 대만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결코 저항이 작지 않았다. 1895년 일본의 강제점령 당시에는 청나라 출신 관료들이 저항운동을 벌였고, 일본군이 내부 산악지대로 쳐들어오면서 원주민들도 강하게 저항했다. 일제강점기 초기 5년간 대만주민 3000여명이 사형당할 정도로 강경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기에는 대만에서만 무려 20만명 이상이 강제 징병돼 동남아시아 전선으로 끌려갔고, 3만명 이상이 전사하기도 했다. 일제에 이를 갈만큼 당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만통치는 태평양 전쟁 말기를 제외하면 조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대만은 일본의 첫 대외식민지이자 아시아국가 중 최초로 제국주의 국가에 편입된 일본 입장에서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식민통치를 자랑하기 위한 창구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토 히로부미 역시 "대만의 통치에 실패하면 히노마루 깃발의 빛은 실추한다"며 대만통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따라 대만에는 초기 5년과 태평양전쟁기를 제외하고 군인이 아닌 민간 정부출신의 총독이 파견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만총독부 건물의 모습(사진=대만총통부 홈페이지/www.president.gv.tw)

일제강점기 당시 대만총독부 건물의 모습(사진=대만총통부 홈페이지/www.president.gv.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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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파견된 일본의 공무원들은 이곳에 설탕사업, 아편전매사업 등 각종 상품성 작물 재배를 통해 경제적 자생력을 키웠고, 일본 본국의 예상을 뛰어넘어 편입 10년만에 재정자립에 성공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조선을 식민지화한 이후 대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쟁 전까지 조선처럼 대규모 양곡 수탈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원주민들의 땅을 뺏거나 개발사업을 대규모로 일으킬 것이 없었다. 양자간에 경제적으로 원한이 생길 일이 별로 없었던 것.


더구나 일본이 점령하기 전에 이곳을 지배했던 청나라 역시 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같은 외부 침략자에 불과했고, 별도 국가나 민족주의가 형성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역사시대 동안 일본을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로 생각해온 우리나라와는 입장이 전혀 달랐던 셈이다. 청나라 출신의 몇몇 관료들을 제외하면 중국인의 숫자도 매우 적었고, 이들 역시 본토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들어온 중국 국민당의 무자비한 통치가 이어지면서 결정적으로 대만에서는 일제강점기가 상당히 미화됐다. 국민당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최종 패배, 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들어오면서 이곳이 원주민들을 크게 탄압했고 반일과 반공을 기치로 독재정치를 폈다. 일제가 남긴 대만총독부 건물이 여전히 총통부로 사용되는 것에는 대만이 겪은 또다른 역사적 트라우마가 숨어있는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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