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금빛 유령/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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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고
 더구나 주인은 더 아니며
 우리가 그냥 돈이고 돈더미다
 돈의 객체가 아니라
 치열한 치명적 주체다
 우리는 이미 확고한 물질이며 필연이며
 무한 번식인 욕망의 원소다
 우리는 그러므로 결단코 죽지 않는다
 맥아더의 노병처럼 사라져 갈 뿐인가
 아니, 다만 썩어 갈 뿐이다
 썩어서 거름이 되고 발효의 효소가 되어
 불굴의 욕망을 팽창시킬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돈의 유령으로서
 우주를 장악할 것이다
 어떤가, 생명 지닌 것들의 복잡 가련한 생사에
 주눅 들지 않는 기개가 경이롭지 않은가
 가장 현란한 물질의 욕정으로서
 불사의 우주 천지를 번식시켜 나갈 것이다
 물질에게 절망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결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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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두고 "돈의 노예"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표현은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그 까닭은 일단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의적인 것과 애매모호한 것은 그 의미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잘 구별해야 한다. 즉 어떤 구절이 여러 가지 맥락들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반드시 불분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돈의 노예"는 뭔가 불투명하다. "돈의 노예"는 '돈에 매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 사람'일 수도 있고, 수전노와 같이 '돈에 집착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앞뒤 문장의 대략적인 흐름에 따라 이 가운데 혹은 이외에서 그 뜻을 가늠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돈의 노예"라는 표현은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을 피동형의 상태로 한정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돈'과 관련된 이런저런 문제들로부터 면책특권을 획득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돈의 노예"로 자처함으로써 그것과 연루된 우리 자신의 죄악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을 가리켜 '돈의 주인'이라고 선언한다면? 미안하지만 노출증은 관음증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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