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내 신문을 좀체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야당을 두둔해 불공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로는 당시 ‘통일안’ 맞춤법을 어려워 했고 탐탁치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쓴 문장에 대해 비서진이 맞춤법에 맞게 수정할 것을 요청하면 “유식한 자네가 나 대신 대통령 하게! 나는 무식해서 그래!”라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같은 인식은 이른바 ‘한글 파동’을 낳았다. 이 전 대통령은 1949년 한글날에 “이전에 만든 것을 개량하는 대신, 오히려 쓰기도 더디고 보기도 괴상하게 만들어 놓아 퇴보된 글을 통용하게 되었으니”라며 탄식했다. 소리나는대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잇다’와 ‘있다’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1953년 4월 ‘현행 철자법의 폐지와 구식 기음(記音)법의 사용’이라는 국무총리 훈령을 공포했다. 문맹률이 높았을 때이므로 보다 많은 국민들이 쉽게 한글을 익히고 쓰도록 하자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발은 거셌다. 한글학회는 “일정한 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구식 맞춤법을 쓰라 함은 학술 진리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 “총리 훈령을 통한 행정조치로 전문 학자들의 총의를 짓밟는 것은 권력의 문화 교살이며 국어 발전을 유린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각 신문들도 철자법 폐지는 혼란만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초중고교 교장들도 반대 의견을 표했다.
정부는 결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어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밀어붙이려 했으나, 정작 위원회는 기존 맞춤법 통일안을 따르는 것으로 결론내 버렸다.
이 전 대통령은 굽히지 않았다. 이듬해에 아예 ‘한글 간소화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학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정부는 국회, 학술원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안의 실시를 보류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1955년 9월에 가서야 “민중이 원하는대로 하겠다”며 백기를 들고 만다.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잇다’와 ‘있다’가 구분되지 않는 한글을 가질 뻔 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전 대통령은 독재 정치를 폈지만 한글 간소화만큼은 ‘울며 겨자먹기’ 식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절차를 수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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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여부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작은 대한민국이었다”고 평가했다. 공사 중단 공약이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방식으로 밀렸다. 대신 원전 안전 기준을 높이고 신규로 원전을 짓는 계획은 중단하는 등 탈원전 기조는 확고히 했다.
민주주의는 일견 답답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든다. 하지만 갈등을 푸는 유일한 열쇠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 할만하다. 물론 옳고 그름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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