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재건축 부재자투표, 매표 '사각지대'
사전투표 80~90%, 은밀한 뒷거래 매표행위 횡행…공정 경쟁 저해 우려, 제도 개선 시급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계약금 1000만원, 부재자 인당 100만원 별도 수당, 당사 선정 시 계약금 3배."
지난 15일 시공사 선정을 끝낸 서울 서초구 한신4지구 재건축 사업 불법 매표 행위 제보 내용이 공개되면서 정비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경찰에 금품 살포를 둘러싼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수사 착수도 현실이 됐다.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둘러싼 '부재자 투표'에 모이고 있다.
부재자 투표는 원래 건강상의 문제나 개인 사정 등으로 조합원 총회 당일 현장 출석이 어려운 이들의 기회 보장을 위해 마련됐다. 보통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2~4일간 부재자 투표가 진행된다.
조합원 총회는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불법 행위가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반면 부재자 투표는 불법ㆍ탈법 행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건설사 쪽 홍보요원이 투표장까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의 사례금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표 행위는 당사자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양심선언'이 나오지 않으면 감춰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단속 엄포에도 불법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재건축 사업의 특성과 맞물려 있다. 강남 대단지의 경우 사업 규모는 1조~3조원에 이른다. 경쟁사 쪽으로 기운 조합원 100~200명 정도만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도 조합원 총회에서 승리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11조 제5항은 "누구든지 시공자의 선정과 관련해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문제는 불법 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수사 당국의 레이더망에 걸리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강력한 처벌은 물론이고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부재자 투표 자체를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부재자 투표 비율은 80~90%에 이른다. 올해 최대 관심 대상이었던 사업비 2조6000억원 규모의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의 경우 조합원 2292명 중 1893명(82.6%)이 부재자 투표에 참여했다.
조합원 대다수가 부재자 투표를 통해 한 표를 행사하게 되면서 조합원 총회는 사실상 요식 행위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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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부재자 투표는 브랜드 평판을 토대로 표심을 행사하기 때문에 큰 회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전 투표 비중이 클 경우 중견 건설사는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재건축 수주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건설사의 입찰 제한이나 시공권 박탈 등의 추가 제재도 필요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불법 리베이트 행위는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를 교란하고 아파트 분양가 인상을 초래한다"면서 "업체 간 묵인해왔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내부 제보에 대한 신고포상금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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