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주식투자


박스권 탈피·하반기 긍정 전망
융자 이자율 인하로 투심 유혹
신용거래융자 8조7028억 훌쩍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문채석 기자]이슬기 씨는 올해 들어 고공행진을 이어왔던 국내 증시가 하반기에도 견조한 우상향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믿고 지난 7월부터 1년 후 전세자금에 보탤 5000만원에 증권사로부터 신용융자를 받아 테마주 매매를 하고 있다. 그는 이미 가파르게 상승한 정보기술(IT)주 대신 바이오주에 투자를 했고 최근에는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주 비중을 높였다. 하지만 갈수록 걱정이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거뒀으나 8월부터 심화된 지정학적 위험으로 투자한 종목의 주가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손실이 커지기 시작한 탓이다.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부채 축소 또는 관리에 나섰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옥죄니 상대적으로 부채의 질이 떨어지는 은행권 자동차 대출 잔액이 급격하게 불기 시작해 2조원을 넘어섰고, 카드론 잔액은 위험수준인 27조원으로 치솟았다.

여기에 사실상 가계부채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빚을 내 주식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이 늘면서 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역대 최대치인 8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9월 들어 연일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한 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긴 추석연휴를 앞두고 마지막주 소강상태에 진입했지만, 3분기 어닝시즌(Earning Season)을 앞두고 다시 불어날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빚 얼마나 늘었나= 26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8조7028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말 4977억원에 불과했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010년말 6조원에 육박한 이후 2012년 3조8800억원으로 감소했으나 2013년말 4조2000억원, 2014년말 5조800억원, 2015년말 6조5200억원, 2016년말 6조77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신용거래융자 잔액 증가추세는 2015년 이후 가장 가파르다. 올 들어 신용거래융자 잔액증가폭은 지난해 연말 대비 28%에 달했다. 10%내외에 불과했던 연평균 증가폭이 올해 3배 가까이 높다. 코스피가 지난 7월 2453.1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수년 동안 이어졌던 박스권을 탈피하면서 빚을 내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이 급증한 결과로 풀이된다.


새 정부 들어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내리기 시작한 점도 최근 잔액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KTB투자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에 이어 지난 22일에는 키움증권이 11월3일부터 1~7일 단위 이자율을 연 11.8%에서 7.5%로 4.3%포인트로 낮추는 등 이자율 조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증권사가 이자율을 인하하는 것은 100% 독자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가계소득 부양 정책 노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몇 년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에도 이자율을 좀처럼 내리지 않았던 것을 보면 새 정부의 정책에 호응한 측면이 있다"며 "이자율 인하로 인해 신용융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밋빛' 전망에 빚 늘리는 개인= 증권사 전문가들이 잇달아 내놓은 긍정적인 하반기 전망이 빚 내 투자하는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올해 3분기 코스피 2차 상승세가 시작될 전망이라며 지수 상단을 2500에서 2600으로 상향 조정했고 NH투자증권, 키움증권, 유진투자증권 등도 연내 2500선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IT 대형주가 홀로 이끌었던 상반기 시장과 달리 남은 하반기 중소형주와 코스닥 시장으로 관심이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투자심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코스닥 바이오주를 포함해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관련주 등이 최근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증권사 투자분석팀 한 연구원은 "신용융자 규모의 적정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3분기 IT주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실적 전망이 나오면서 주요 증권사들이 국내 증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높이고 있고, 순환매에 따른 중소형주에 대한 기대감이 개인들이 빚을 내 주식투자하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잠재된 뇌관, 당국은 무대책= 신용융자잔고 잔고 급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하루 이틀 있었던 게 아니다. 증시가 대세 상승장에 진입한 경우 빚내서 투자하는 개인들이 늘었고 이는 과열 경고로 이어졌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직전 4~5조원에 머물던 신용융자 잔고는 각각 7조원, 6조9000억원까지 급증하기도 했다.


거래량을 늘려 증시활성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 증시는 물론 가계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 신용융자 잔고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대외악재는 변동성을 높여 전체 증시의 하락과 개별 종목의 주가 급락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빚을 내 중소형주 또는 코스닥 종목에 단기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원금 손실은 물론 큰 빚을 떠안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AD

그러나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관리를 해야 할 금융당국은 신용융자 이자율에만 몰입한 채 정작 부채관리에는 소홀한 모습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는 신용융자가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신용거래 리스크관리 등을 위한 모범규준'과 '신용거래융자 핵심설명서'를 갖추고 있으나 정작 실태조사와 검사에는 소극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체 시장규모를 봤을 때 신용융자 규모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 앞으로 큰 폭으로 늘어난 가능성이 낮다"며 "이자율 관련 모범규준 제정 이외에 별도의 조사를 벌일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