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복 날 들어와
라일락꽃 보며 퇴원한다
뒤엉킨 차량들
싱싱도 하십니다
자연스러우십니다
골목길 쓰레기통
똥파리 떼 왱왱 날아
자태 화안하십니다
향기 드높으십니다
■말복은 팔월 중이고 라일락이 피는 때는 사오월이니, 이 시의 화자는(혹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적은 것이라면 이 시를 쓴 시인은) 근 열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열 달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며 그러니 깊은 병이었을 것이다. 그 열 달 동안 병원 바깥이, 그 바깥에서의 삶과 사람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줄 서서 기다리는 정류장 앞"이 "싱싱"해 보이고, 차도에 "뒤엉킨 차량들"마저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라니 말이다. 심지어 "골목길 쓰레기통"에서 "왱왱"거리는 "똥파리 떼"까지 그 '자태가 화안'하고 '향기가 드높'다고 말할 정도니 여기다 구태여 다른 말을 덧보태지 않아도 오랫동안 병을 견딘 자의 생에 대한 순정한 간절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아프면 꼭 그만큼 순해진다고 믿는다.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병중에 어떤 순리를 깨닫는 듯해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말복'과 '라일락이 피는' 사이가 열 달 가까이 되는 기간이라는 사실도 새삼 달리 보인다. 사람이 태중에 있는 동안이 근 열 달 아니던가. 이 시의 무구하고 무애함은 거듭난 자의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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