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 퇴원하는 날/유안진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지난해 말복 날 들어와
 라일락꽃 보며 퇴원한다
 줄 서서 기다리는 정류장 앞
 뒤엉킨 차량들
 싱싱도 하십니다
 자연스러우십니다

 골목길 쓰레기통
 똥파리 떼 왱왱 날아
 자태 화안하십니다
 향기 드높으십니다

 
■말복은 팔월 중이고 라일락이 피는 때는 사오월이니, 이 시의 화자는(혹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적은 것이라면 이 시를 쓴 시인은) 근 열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열 달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며 그러니 깊은 병이었을 것이다. 그 열 달 동안 병원 바깥이, 그 바깥에서의 삶과 사람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줄 서서 기다리는 정류장 앞"이 "싱싱"해 보이고, 차도에 "뒤엉킨 차량들"마저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라니 말이다. 심지어 "골목길 쓰레기통"에서 "왱왱"거리는 "똥파리 떼"까지 그 '자태가 화안'하고 '향기가 드높'다고 말할 정도니 여기다 구태여 다른 말을 덧보태지 않아도 오랫동안 병을 견딘 자의 생에 대한 순정한 간절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아프면 꼭 그만큼 순해진다고 믿는다.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병중에 어떤 순리를 깨닫는 듯해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말복'과 '라일락이 피는' 사이가 열 달 가까이 되는 기간이라는 사실도 새삼 달리 보인다. 사람이 태중에 있는 동안이 근 열 달 아니던가. 이 시의 무구하고 무애함은 거듭난 자의 것이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자동차 폭발에 앞유리 '박살'…전국 곳곳 '北 오물 풍선' 폭탄(종합) 하이브, 어도어 이사회 물갈이…민희진은 대표직 유임 (상보) 김호중 검찰 송치…음주운전·범인도피교사 혐의 추가

    #국내이슈

  • 중국 달 탐사선 창어 6호, 세계 최초 달 뒷면 착륙 트럼프 "나는 결백해…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에서" "버닝썬서 의식잃어…그날 DJ는 승리" 홍콩 인플루언서 충격고백

    #해외이슈

  • [포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충일 [이미지 다이어리] '예스키즈존도 어린이에겐 울타리' [포토] 시트지로 가린 창문 속 노인의 외침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다'

    #포토PICK

  • 베일 벗은 지프 전기차…왜고니어S 첫 공개 3년간 팔린 택시 10대 중 3대 전기차…현대차 "전용 플랫폼 효과" 현대차, 中·인도·인니 배터리 전략 다르게…UAM은 수소전지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심상찮은 '판의 경계'‥아이슬란드서 또 화산 폭발 [뉴스속 용어]한-UAE 'CEPA' 체결, FTA와 차이점은? [뉴스속 용어]'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속도내는 엔씨소프트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