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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가족사진 /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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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오빠 국민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한다 다섯 형제가 엄마 앞에 차례로 섰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는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엄마 등에 업혀 있다 오래전 죽은 엄마의 고무신은 아직도 하얗다 오십도 안 돼 죽은 둘째 오빠는 키가 다 자라기도 전이다 참 잘 웃고 있다 아픔이라고는 없는 배경이다 슬픔이라는 단어는 배우지도 못한 종아리들이다 그때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고통의 새하얀 핏덩이는 그때 어디서 자라고 있었을까 죽음이라는 솜털 보송한 씨앗은 누구나 보았다던 사랑은 어느 구름 위에 있었을까 집도 없이 떠돌았을 행복은 막내 오빠의 꼭 다문 입속도 거쳐 갔을까 나는 없는 내 사진 속,

 
 [오후 한詩] 가족사진 /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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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란하다'라는 말 참 좋지 않은가. 가족사진을 보고 있자면 '단란하다'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단란하다'는 혼자가 아니라 한 가족이나 혹은 여럿이서 행복하고 화목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행복하다'나 '화목하다'에 비해 '단란하다'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조금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이 든다. '잎'과 '잎새' 혹은 '이파리'가 그러하듯 단지 어감상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마냥 흐뭇하기가 쉽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실은 그 '여럿'이 가족이라서, 가족사진의 저 환한 찰나 속에 함께 스며 있는 고통과 슬픔과 상처들을 어쩔 도리 없이 속속들이 알기에 그런 것일 것이다. 가족은 정답고 알뜰하고 지극한 살붙이다. 그리고 또한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애가 타고 안타깝고 아쉽고 서러운 서로인 게 가족이다.
채상우 시인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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