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이별·유랑…동서고금 名詩에 어우러진 하나의 메시지
한국 문학사의 빛나는 금자탑인 '한국문학통사'의 저자 조동일 교수가 동서고금의 명시를 엮어 해석한 연작 시집이 출간됐다. 조 교수는 한국어를 비롯해 한자,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어 등 7개 언어의 시를 총 6권의 주제별로 엮고 그에 대해 깊이 통찰한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가 이들 언어를 선택한 것은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는" 언어들이라는 기준에 따른 것이다. 6권의 순서는 엮은이가 생각하는 하나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즉 "시인이 고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 한탄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먼 곳으로 가서 유랑하고, 시에서 위안을 얻는 것이 그 다음 순서이며, 시인 노릇에 대한 자성,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항변이 뒤따르는 것이다."
각 권마다 150편 안팎의 시들이 실려 있는데 '실향의 노래'에선 백석의 '고향'과 헤세의 '고향', 두보의 '돌아가는 기러기'가, '위안의 노래'에선 괴테의 '방랑자의 밤 노래', 워드워즈의 '무지개', 타고르의 '종이배', 디오프(세네갈)의 '숨결', 에제킬(인도 현대시인)의 '섬', 윤동주의 '서시'가, '항변의 노래'에서 왕유의 '우언', 하이네의 '거꾸로 된 세상', 심훈의 '그날이 오면', 엘뤼아르의 '자유'가 한데 묶여 있는 식이다.
이 '서정시' 시리즈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출판 분야에서도 전무했던 특별한 발상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왜 이런 작업에 나선 것일까. 그에 따르면 서정시는 "동서고금 모두 하나이다." 지역, 나라, 언어, 종교 등의 여러 차이점을 넘어서서 공통된 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어에 따라 구분되고 전공자가 각기 따로 있어 서로 소통되지 않는" 현실이다. 그래서 올해 78세의 이 노학자는 "오랜 인습을 타파하고 장벽을 헐어 인류가 이룩한 명작을 한 자리에 모아 커다란 꽃동산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통사' '포괄적 시야'의 제시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조 교수다운 접근이다.
이 '꽃동산'은 시의 본질을 깊이 파고드는 시론이 아니다. 다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언제건, 동에서건 서에서건 어디든 시가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엔 시인이 시를 쓰는 마음, 그런 시를 사람들이 읽는 마음, 시를 쓰는 이와 시를 읽는 이 간의 공명이 이 세상을 사는 데 하나의 힘, 때로는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큰 힘이 돼 왔다는 것을 들려주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별을 하고 슬픔에 빠질 때, 그 이별과 슬픔이 시라는 형식, 시적 상태를 거쳐 나오면 그 이별은 진짜 이별이 되고 슬픔은 진짜 슬픔이 된다는 것, 또 그 슬픔을 겪고 나면, 아니 겪어야만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라는 것은 사람의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최소한 시는 그 마음의 밑바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해 주는 데 시가 할 수 있는 바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밑바닥의 뭔가와 교섭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그럼으로써 이 연작시집은 결국 시에 대한 옹호, 시의 영생과 불사에 대한 믿음을 펼쳐 보인다. 시의 영생의 기록이며 불사의 예언서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들을 읽으면서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있는 한 시는 소멸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될는지 모르겠다. 시가-혹은 시와 같은 것이- 없으면 인간의 진짜 삶이란 것도 소멸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은 또한 책의 영생에 대한 얘기의 한 토막이다. 이 책을 보내온 편집자와 서너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짧은 메일을 보내면 긴 답장이 왔다. 그 답장에선 자신이 만든 책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과 자부의 마음이 넘쳐났다. 그 마음이 이 시집에 또 하나의 시를 이룩하며 시집을 완성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이 시를 틈틈이 읽었던 그 시간, 그건 시를 읽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한 시간이자 세상의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책의 미래에 대해 어떤 불안한 소문이 나돌더라도 인간의 삶이 있는 한, 책을 만드는 이의 자부와 긍지가 있는 한, 책은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불어넣는 시간이었다.
조 교수는 의상의 화엄철학을 빌어 "소설이 '하나가 전부(一卽多)'라면 서정시는 '전부가 하나(多卽一)'이다. 소설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이면서 얼마나 다르게 사는지 보여주는 데 반해 서정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그 말처럼 이 시집은 전체가 한 편의 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한 편의 시는 시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을 우리 앞에 열어준다. 그건 단지 또 하나의 문이 아니라 지금껏 있었던 어떤 문들에 비해서도 매우 넓은 문인 듯하다. 우리가 시로 들어가는 데에는 이런 넓은 문, 특별한 문도 필요해 보인다.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1-6 시리즈, 조동일 엮음. 내마음의 바다, 각 권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