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끝까지 사죄는 없었다

(사진=AP연합)

[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 75년 전인 1941년 12월7일 구(舊)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해 1000명의 미군이 수장된 애리조나호 위에 세워진 애리조나기념관에 미국 일본 양국 정상이 27일(현지시간) 사상 처음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고과 함께 일본군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습으로 사망한 미국인 2403명의 영혼이 잠든 이곳에서 그는 헌화만 하고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신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부전(不戰)의 맹세'를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헌화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전쟁으로 희생된 전사들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애도를 바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그는 "전쟁에서 싸우던 미국과 일본이 이제 '희망의 동맹'이 됐다"면서 "세계인에게 진주만이 화해의 상징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양국 동맹을 공고히 했다.

AP 통신은 아베 총리가 진주만 공습에 희생당한 이들에게 '용감한 남성과 여성'이라고 칭하며 경의를 표했다고 소개했지만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들을 전쟁의 화마로 몰아넣은 것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의 방문 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전 세계 언론은 그의 '사죄 여부'에 주목했다. 외신들은 이번 방문에서 아베 총리가 일본의 2차대전 책임이나 이에 대한 사죄, 반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2015년 4월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 같은 해 8월 제2차 세계대전 종던 70년 담화에 비해 의미가 후퇴했다고 분석했다.

예상대로 전쟁 사죄는 물론 반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아베 총리는 미일 관계의 '화해의 힘'을 강조하며 굳건한 동맹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사죄보다는 미일 간 동맹 관계를 다지는 데 집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전쟁의 상처가 우애로 치유될 수 있고 과거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일 관계는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화답했다.

아베 총리의 애리조나기념관 방문은 역대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의 답방 성격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찾아 원폭에 희생된 이들을 애도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도 이때 원폭 투하 책임에 대해 사과를 하진 않았다.

한편 아베 총리는 방문 일정 첫날인 26일 태평양전쟁 전사자들이 잠든 미국 국립태평양기념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2차 대전 당시 적이었던 미일이 이후 화해하고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화해의 제스처를 보인 셈이다.

이후 진주만 공습 당시 전사한 일본인의 묘지, 2001년 하와이에서 발생한 에히메(愛媛)현립 우와지마(宇和島) 수산고 실습선 에히메마루호 침몰사고 희생자 위령비 등을 찾아 헌화했다.

27일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애리조나기념관 방문에 앞서 미국 태평양사령부 본부가 있는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H.M 스미스 캠프에서 마지막 정상회담을 했다. 27분간의 회담을 통해 양국 정상들은 미일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