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 20년의 '그림자 경영' 틀 깬 정유경
15일 대구 신세계 그랜드오픈식 참석
조용한 '침묵의 경영자'로 정평
범삼성가의 뿌리 대구서 경영능력 시험대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재계 오너일가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한 경영인으로 꼽혔던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대외 행보를 시작했다. 넓어진 보폭만큼 성과가 가시화되며 내년부터는 '정유경의 신세계'가 본격적으로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평가다.
정 사장은 15일 오전 개최된 복합쇼핑몰 대구 신세계 그랜드오픈식에 참석했다. 그룹의 공식행사에 참석한 것은 1996년 입사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별도의 인사말은 없었지만, 그간 바깥 행사에서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정 사장의 참석은 그 자체로 이목을 끌었다. 그는 올해 신세계그룹의 마지막 출점 현장인 대구에 나타나 조용히 오픈을 축하했다.
네 살 터울의 오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비교해 그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는 쪽이 맞다. 현장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오너인 자신은 큰 틀의 사업, 방향만 구상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평소 그의 생각이었다. 최대한 조용하게, 소리 없는 곳에서 일한다는 자신의 방침이 바뀐 것은 아니다. 대구 현장까지 찾아왔지만 어떠한 일성 없이 자리를 뜬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이날의 행보는 여러 의미에서 정 사장에게 뜻깊다. 무엇보다 대구라는 지역 자체가 그렇다. 대구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그룹 모태인 삼성상회의 문을 처음 연 곳이다. 범삼성가인 신세계그룹에도 뿌리, 고향이나 다름없다.
1973년 진출했다가 3년 만에 문을 닫은, 신세계백화점으로서는 뼈아픈 실패의 기록을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40여년 만의 재도전에 나선 정 사장에게는 과제이자 도전의 상징인 셈이다.
정 사장이 특히나 관심을 두고 추진하는 화장품 사업의 새로운 출발점 역시 이곳, 대구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2012년 비디비치, 2014년 바이레도ㆍ라페르바, 지난해 산타 마리아 노벨라 등 유명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한 정 사장은 올해 5월 세계 1위 색조화장품 제조사 이탈리아 인터코스와 합작한 법인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를 만들었다. 꾸준했던 앞선 노력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게 바로 대구 신세계에 첫 매장을 여는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다. 신세계가 그간 인수한 다수의 화장품 브랜드를 유통하며 수익을 내고, 신세계그룹의 최대 강점인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해 보여줄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 사장은 정 부회장과의 지분 맞교환을 통해 각각 백화점·면세점, 대형마트·복합쇼핑몰 사업을 맡는 책임경영 체제를 완성한 바 있다. 정 사장의 아이디어로 등장했던 프리미엄 슈퍼(SSG푸드마켓)를 이마트에 넘기는 변화도 감수했다. 2016년 말은 시기적으로도 본격적인 경영성과가 필요한 때라는 얘기다.
정 사장은 오픈식 전 대구 신세계에 다섯 차례나 방문해 현장을 챙겼다. 관심이자 고민, 애착이자 간절함에서다. 그룹의 고향 대구에서 정 사장의 그간 물밑 행보가 자신감의 부재였는지, 진정성 있는 철학이었는지 검증받게 될 것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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