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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티워드]'뜨끈뜨끈' 설렁탕, 그런데 '설렁'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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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음식의 언어를 찾아서…③설렁탕

설렁탕(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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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부쩍 뜨뜻한 설렁탕 생각이 난다. 요사이 최순실 때문에 곰탕에 밀리고 있지만 서울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설렁탕은 쓰린 속을 덥혀주고 주린 배를 채워주는 서민의 대표 국물 음식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에 파를 듬뿍 넣고 밥 한 그릇을 말아 깍두기 얹어 먹는 상상은 침을 꼴깍 삼키게 한다.

그런데 설렁탕에서 '설렁'은 무슨 뜻일까. '설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바람이 거볍게 부는 모양이지만 이는 설렁탕과는 관계가 없다. 설렁탕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들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서 풍년을 기원한 뒤 소를 고기와 뼈째 푹 고아 나눠 먹던 선농탕(先農湯)에서 시작됐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이를 발음하다 설렁탕이 됐다는 것이다. 설렁탕의 한자 표기는 더 있다. 세종대왕이 친경을 할 때 비가 많이 내려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배도 고파 농우(農牛)를 잡아 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여기서 비롯돼 설농탕(設農湯)이라고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설렁탕이 눈처럼 희고 국물이 진하다고 해서 설농탕(雪濃湯)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몽골어에서 '설렁'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고려시대 몽고에서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이는 조리법이 들어와 설렁탕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몽고 군사들이 전쟁 중에 간단하게 먹었던 고기 삶은 물인 '공탕'을 몽고어로 '슈루'라고 발음하는데 이게 전해져 설렁탕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의 설명을 보면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에서는 "혹시 국물 맛이 설렁설렁하고 고기도 설렁설렁 들어간 상태를 보고 설렁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 했다. 설렁설렁은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움직이는 모양을 뜻한다. 많은 물이 끓어오르며 이리저리 자꾸 움직이는 모양이라는 의미도 있다. 뼈와 고기, 내장 등 소의 각종 부위를 모두 넣고 푹 고아낸 조리법이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가볍게 일을 처리하는 것과 닮았고 끓어오르는 모양 역시 설렁설렁하기 때문에 이 추정도 그럴듯하다.

어떤 설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의 여러 재료를 설렁설렁 넣는 것이 설렁탕의 성격인 것은 맞는 말이다. 1970년대 언론인 홍승면 선생은 음식 칼럼 '백미백상'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살코기만이 들어 있는 얼치기 설렁탕은 질색이다. 설렁탕의 생명은 국물이지만, 건더기는 연골이나 섯밑이나 또는 만하, 콩팥 따위의 내장이라야 제격이다. 설렁탕은 결코 점잔을 빼는 음식이 아니다. 고기라면 쇠머리편육 정도가 고작이고, 결코 비싼 살코기를 주로 쓰는 음식은 아니다."
이 글에서 홍승면은 설렁탕이 500원이라고 썼다. 1970년대 얘기다. 지금은 한 그릇에 8000원이 넘는 집들도 많다.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가격은 16배 상승했지만 설렁탕 한 그릇에 의지했던 고단한 서민의 삶은 여전히 그대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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