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스토리-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을 기죽이는 건, 작품 곳곳에 빼곡한 낯설고 매력적인 어휘들이다. 그 시절에 썼음직한 말들을 어디서 다 찾아내고 익혔는지 잘 꿰어진 구슬들처럼 문장들이 반짝거린다. TV드라마에서도 빌려썼다는 ‘김탁환 황진이’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허엽은 황진이를 감화시킨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다. 허엽의 아들 허균은 ‘성옹지소록’에서 황진이에 관한 일화들을 상당히 자세하게 전하고 있기도 하다.) 김탁환은 아무도 섬세하고 집중력있게 주목하지 못했던, 황진이의 내면을 나름대로 끄집어냈으나, 그녀를 만나는 독자로서는, ‘기생 황진이’나 ‘여인 황진이’가 아니라, ‘영웅적인 철학자 황진이’ 혹은 ‘선비 황진이’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내공은 빵빵한데 이야기가 다소 심심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
조선의 남성들인 그들은, 황진이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황진이에 관한 입담들을 유포하며 즐긴 혐의가 있다. 물론 그런 입장을 지금의 관점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선 사회를 벗어나있는 우리로서 전시대의 관점을 답습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김탁환 또한 그런 착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갔다. 그 결과 ‘슈퍼 황진이’가 탄생해버렸다.
나는 황진이에 관한 자료를 검토한 뒤 한 동안 그녀의 생애에 대해 숙고하고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체 이 여자는 무엇이 문제였던가. 무엇이 이 여자를 살아있게 만들었던가. 이 여자의 가치와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붙잡고 시름하기도 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하나로 묶기로 했다. 그걸 나는 ‘황진이 콤플렉스’라고 부르고자 한다. 황진이 콤플렉스의 핵심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황진이는 이 땅의 기생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을 만큼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이다. <②에서 계속>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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