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서 잘나가는 그를 말릴 순 없었다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이정호 KEI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술잔을 들었다. 이날 워크숍을 주최한 기관의 센터장으로서 인사말과 건배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 센터장은 "나는 친일파(親日派)다"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마지막 사장이었다"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다"라는 등의 발언을 웃으면서 늘어놨다. 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갑자기 주변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이 센터장이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듣고 있었다.
이와 관련, KEI는 "아시아경제 보도에 언급된 워크숍은 열린 적이 없으며 당연히 이 센터장이 그런 워크숍에 참석한 사실도, 만세 삼창을 한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은 이 센터장이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밝힌 당시 상황과도 배치된다. 이 센터장은 "그 정도 됐으면(발언이었으면) 술자리였을 거다"라고 취중 실수임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냥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센터장 해명과 달리 참석자들 대다수는 불쾌감과 반감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센터장이 공개석상, 그것도 정부부처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세종시에서 친일 선언과 만세 삼창을 하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일제강점기에나 떠돌던 일왕에 대한 충성맹세를 21세기에 우리 정부 관계자를 통해 듣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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