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2006년 5월1일, 아시아경제신문 첫 출근날. 편집국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선배로부터 받았던 날카로운 첫 질문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너, 축구 좀 하냐?"

5월은 기자협회 축구대회로 대한민국 신문사와 방송사가 전의를 불태우는 달입니다. 당시 아시아경제의 규모는 지금보다 작았습니다. 축구대회에 참가할 11명의 선수를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기자협회 축구대회 1승이 염원이었던 시절.


입사 후 1년간 회사는 엄청난 양적 팽창을 시도했습니다. 수습만 세 기수를 더 뽑았고 입사 1년만에 후배들만 스무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축구부 인원도 풍족해졌고 그 중에는 '뭐 저렇게 날랜 놈이 다 있나'라고 혀를 내두르게 했던 후배도 두 명 있었습니다(그 중 한 명은 지금 뉴욕 특파원). 축구대회 성적도 수직 상승해 지난해 준우승, 올해 8강을 일궈냈습니다. 이제는 제법 '전통의 강호'로 자리매김한 모습입니다.

아시아경제 신문 지면을 두고 '전통의 강호'라고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묘하게도 축구대회 성적과 회사의 성장은 비례했습니다. 인적 자원이 풍부해졌거나 구성원들의 투지와 노력 덕분이었겠지요. 아마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언론사 중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던 기자들이 바로 아시아경제 기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2007년 입사 후 처음으로 참가했던 워크숍에서 한 선배는 "티코에게 그랜저를 따라잡으라고 한다"며 당시의 아시아경제인들의 악전고투를 일갈하기도 했지요.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지금은 그랜저만큼은 아니어도 중형급으로 회사를 키웠는데 세상이 지금 전기차, 무인차의 시대로 바뀌고 있네요. 더 달리라는 뜻이겠지요.


돌이켜보면 2006~2007년 회사는 정말 과감한 변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입사 한 달 만에 신문의 제호는 제일경제신문에서 아시아경제신문으로 바뀌었고 지면도 20면에서 24면으로, 다시 28면을 거쳐 32면으로까지 늘었습니다. 2006년 중국 베이징에 처음으로 특파원을 보냈고 2006년부터 2007년 말까지 다섯 기수를 뽑았으니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도 과감했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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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과감한 선택들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던 온라인 시장에서 빨리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계기도 됐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시아경제에서 월급을 받고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이 그랬죠.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그래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회사는 많이 커졌다는 것을 느끼기에 버티는 힘이 돼 주는듯 합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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