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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가슴 드러낸 그녀와 '속옷 면적'축소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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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쁨의 '허튼 시선' - 여성, 노출과 은폐의 역사적 숨바꼭질

[아시아경제 이기쁨 기자] 조선 후기 여성의 옷은, 은폐와 노출이라는 성적 유혹의 양대 기호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치마는 가급적 부풀리고 저고리는 짧게 짧게 올린다. 왜 이랬을까. 벙글어진 치마의 곡선과 젖가슴도 채 못가리는 저고리 섶의 라인은 제각각 에로틱 존을 강조하는 장치들이다.

신윤복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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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맛 속은 사실 텅 비어있다. 치마가 헛것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은 그 속에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무엇을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하는 유혹기제라 할 만하다. 한겹 커튼만 걷으면 바로 라이브가 가능한 그런 무대가 그 안에 있다는 기호이다.

혹자는 여인이 춤을 추면서 치마 밖으로 쏙 삐져나오는 외씨버선 발끝에서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고도 한다. 이 사람이 특별한 변태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허풍처럼 꼭꼭 감싼 치마 속에서 살짝 성적인 정보를 내밀었을 때 임팩트가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렷다.

서구의 빅토리아 시대는 이런 은폐 미학의 절정기였다. 평생 여성의 다리를 본 적이 없는 남자도 있었다는데 그들은 여성에게는 다리가 없다고 단정을 내릴 정도였다. 또 간혹 슬쩍 드러난 여자 다리를 보고 상사병에 걸린 자들도 있었다.
가슴은 또 왜 이런가. 꽉 조인 저고리는 어깨를 아프게 하고 벗을 땐 소매가 후두둑 뜯어질 정도이다. 이런 의상은 기녀들이 먼저 퍼뜨린 패션이다. 기녀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의식하는 직업을 지닌 여인들이다. 당연히 그 의상은 남자들이 음흉하게 따라가는 그 눈길에 맞춰 기획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저고리는 겨드랑이도 가릴 수 없을 만큼 줄어드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리개용 허리띠가 등장한다. 이른 바 ‘조선 브라자’이다. 저고리가 짧아지니 가슴 사이즈가 문제가 되었는데, 요즘처럼 큰 것을 과시하는 풍조로 흐르지 않고, 가슴이 크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졸잇말’이라는 베로 된 졸이개를 만들어 항상 입고 다녔다. 상의가 좁고 작아지고 하의가 펑퍼짐해지는 것은 세기말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가슴을 내놓은 여인

조선 후기 가슴을 내놓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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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여성들이 커다란 가슴을 부끄럼없이 내놓고 다니는 사진들이 가끔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이건 무슨 변고인가 하고 탄식한다면 그건 ‘동방예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유방이 섹슈얼한 기호로 바뀐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조선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은 중기 이후라고 한다.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표시였다. 나는 이제 할 일을 마쳤다는 선언을 가슴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치마의 강조는 둔부의 크기를 과장함으로써 출산 파워를 홍보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조선 패션은 기녀의 ‘유혹’장치와 여염집 규수들의 ‘과시’장치가 기묘하게 사회적으로 접근한 유행이었다고 하면 될까.

그러면 역으로 가슴은 골짜기를 드러내고 가슴띠를 노출함으로써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콘텐츠에 대해 강조하는 반면, 치마는 거침없이 짧아져 거즈 한 장처럼 붙어있는 속옷을 가리는 일에도 힘겨워지는 요즘의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성들이 견지해온 ‘은폐의 매력’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 숨기는 전략이 보이는 전략에 비해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은폐하면서 유혹할 만한 사회적 욕망을 느끼지 않기 시작한 징후인지도 모른다. 출산에 대한 의무감도 옅어지고 사내를 숙주 삼아 생계를 해나가는 시스템도 상당히 깨지고 있지 않는가. 다만 필요한 것은 전방위에서 쏟아지는 사내들의 시선들 뿐이다. 그 시선들은 여자들의 자아만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자신의 매력을 견적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출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기실 오래된 성적 유혹 체계와 역할 양상을 바꾸려는 혁신이기도 하다. 모두들 벗고 다니면, 여성들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유혹 시스템을 갖춰야 할 수 밖에 없다. 노출과 은폐의 게임은 인류의 끝없는 '섹스 숨바꼭질'이다.




이기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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