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심구이를 가장 맛없게 먹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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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고기를 구워먹는 음식점에 가면 이웃집 K의 아내는 히스테리컬해진다. 등심의 부위가 영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신선하지 않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또 특징 없이 몇 가지 부위를 섞었다고도 화내고, 육우 자체의 품질이 문제 있다고 역정을 낸다. 손님을 깔보고 막 내놓은 것이라고 분개를 섞는다. 양념장이 시원찮은 경우나 상추가 부실한 경우도 여지없이 타박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을 덧붙인다. “내가 고기를 좋아해서, 워낙 많이 먹어봤는지라 도사가 다 됐어요. 어디서 누굴 속이려 든담?” 그녀와 고기를 먹는 날은 내가 다 민망하다. 대개 음식점 주인들은 그녀의 똑 부러진 지적에 쩔쩔 매고 다시 새로운 고기를 가져다 놓지만, 그녀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럴 때 그녀는 더욱 분개하면서 거의 절망적인 목소리로 “하는 수 없지 뭐. 이 껌같은 고기라도 씹고 가야지 뭐. 다신 오나 봐라. 내 행색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사기꾼들 같으니라고...”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불만과 투정을 들으면서 고기를 씹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괜찮게 느껴졌던 고기가 괜히 역해지고 진짜로 불량제품 껌처럼 느껴진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물우물 삼키고 있던 나 자신이, 정말 가엾은 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식 맛은 달아난 지 오래다. 이런 소화불량의 식사를 하고 난 다음, 계산대에는 내가 서게될 때 기분은 더 얄궂어진다. 주인은 음산한 침묵으로 내 카드를 사납게 긁고 있다. 작지않은 돈을 쓰면서 이처럼 보람없는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껌같은 등심을 씹다가 분노에 차서 나왔으니 나의 선심이 고마울 리 없다.


이런 나의 난감과 억울을 폭 꼬집고 있는 글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 제12장의 오미영인구상(五味令人口爽)이 그것이다. 다섯 가지 맛이 사람의 입을 까탈스럽게 한다. K의 아내는 워낙 구운 쇠고기를 좋아하는지라 처녀적부터 그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 고기 맛에 만족 못하는 게 어디 그녀의 잘못이겠는가. 인간 감각의 일반적인 ‘문제’에 가깝다. 등심 맛에 대해서는 워낙 빠삭한지라, 어지간한 고기로는 그녀의 혀를 만족시켜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맛을 감별하고 그 중에서 최상을 찾아내는 센서를 갖춘 셈이다. 이 센서를 훌륭하게 쓰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개는 남을 피곤하게 하면서 자기를 과시하는 데 쓰기 쉽다.

다섯 가지 맛이란 세상의 모든 음식의 맛을 가리킨다. 상(爽)은 밝다는 뜻인데 감각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감각이 발달하면 ‘사람의 마음을 발광(發狂)하게 한다’. 도덕경은 이렇게 사납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하라. 노자의 결론이다. 눈을 위해서 살지 말고 배를 위해서 살아라. 아주 간결하고 평범해보이는 이 말은, 사실 인간의 모든 병폐와 어리석음을 멈추게 하는 긴요한 지혜다. 눈은 뭐고 배는 뭔가. 배는 꼭 해결해야 할 욕망이다. 해결하지 않으면 사는 데 지장있는 욕망이다. 눈은, 그 이상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데 하고싶은 마음이 강렬해지는 그런 욕망이 바로 눈의 욕망이다. 등심을 좋아하는 그녀는,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욕망의 허기를 채우는 것에 공을 들여온 셈이다. 노자는 감각에 몰입하는 일과 그것이 더욱 키워놓는 예민한 센서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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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나는 에피쿠로스에게서 들었다. 이 서양철학자는 말한다. 욕망에는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이 있다. 그것을 구별하는 법은, 그 욕망을 잠깐 중지해보면 알게 된다. 진짜 욕망은 채우지 않으면 무척 괴롭고 곧 죽게될 판이다. 가짜 욕망은 채우지 않아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가짜 욕망을 버리고, 진짜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삶의 소박을 유지할 것을 권한다. 노자의 위복불위목과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이렇게 만난다.


이 땅의 화담 서경덕은 가짜 욕망, 그리고 눈의 욕망을 멈추는 노하우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것은 멈추기 작전(止論)이다. 간단하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랏. 딱 그 말대로 실천하면 된다. 세상의 일을 그르치는 많은 욕망들은, 진짜 욕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린 그걸 진짜로 착각하거나 혹은 욕망의 관성에 못이겨 그만 뭔가를 저지르고 만다. 화담은 이 우행을 끊는 법에 관해 말한다. 우선, 지금 하는 행위를 멈추고 아주 잠깐만 그것이 일어나는 마음을 바라보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욕망을 바라보라는 얘기다. 그러면, 그 욕망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욕망은 스스로 지나가 버린다는 얘기다. 가슴이 비치는 젖은 옷을 입고 잠든 황진이를 옆에 뉘고 책을 읽은 남자, 그가 이 목석(木石)의 마음을 지닐 수 있었던 비결은, 가짜 욕망의 관리였다. ‘불위목(不爲目)’ 세 글자에, 웬만한 마인드 컨트롤 책 몇 권이 들어있다 할 만하다. 후 후, 등심구이가 너무 먼 데까지 왔나.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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