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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소주 곧 5000원? 미친 소주값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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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찬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은 이렇게 시작한다. 1980년대, 힘든 야간작업을 마친 노동자들이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삭이기 위해 소주로 가슴을 달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시는 구조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결의를 드러내며 소주밖에는 기댈 것 없었던 가난한 노동자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시가 발표된 1984년 소주 가격은 360ml 한 병에 출고가 기준 210원이었다. 그해 4월부터는 227원으로 8% 인상된다. 당시 인상 요인은 원료인 주정 값이 한 드럼당 17만1209원에서 19만6449원으로 인상됐기 때문이었다. 생산직 근로자 임금 20만원 남짓에 200원짜리 소주가 결코 싸지는 않았겠지만 도수가 25도였으니 한 병으로도 독한 깡다구와 오기를 가슴에 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가슴 위로 예전처럼 차거운 소주를 마음껏 붓기는 쉽지 않아질 전망이다. 최근 하이트진로가 소주 가격을 올린 이후 다른 업체들도 줄줄이 출고가 인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수는 17도 정도로 낮아져 부어도 부어도 쓰린 가슴을 달래기 쉽지 않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참이슬의 출고가를 5.6% 올렸다.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클래식의 병당 출고 가격은 961.70원에서 1015.70원으로 54원 올랐다. 이후 대전ㆍ충남 지역의 맥키스컴퍼니, 제주 지역의 한라산소주, 부산ㆍ경남 지역의 무학, 대구ㆍ경북의 금복주, 부산의 대선주조 등이 인상 대열에 합류해 웬만한 소주가 모두 병당 1000원대가 됐다.
한 병당 인상 가격은 일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소비자들의 느끼는 체감 인상폭은 상당하다. 식당 등 소매점에서 3000~4000원에 판매되는 소주가 곧 5000원까지 인상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폭' 한 잔 마시기 위해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을 시키면 안주도 없이 기본으로 1만5000원이 깔리는 셈이다.

소주업체들은 원가가 올라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2012년에 가격을 올린 후 3년간 소비자물가와 원료비, 포장재료비, 물류비 상승 등으로 12.5%가량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특히 병 가격이 올랐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업체 측은 최근 3년 간 빈병 가격이 10% 인상됐다고 했다. 또 주정이 소주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이고 도수를 낮추면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천연 첨가물 등 고가 재료가 들어가 원가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 등에서는 3년 동안 세금은 변함이 없었고 주정용 쌀과 보리 가격은 최대 29% 하락해 인상 요인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또 도수 1도가 내려가면 병당 6원 정도가 절감되고 근래 저도수 소주의 유행으로 그 만큼 원가가 줄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히려 가격이 인상된 데 대해 비판이 거세다. 병 값 인상에 대해서도 저도수 전략으로 소비가 늘어 전체 병 생산 비용이 늘어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소주 값 인상이 세수 확대를 위한 꼼수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소주 가격 인상으로 사실상 서민 증세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고가격의 53%가 세금이니 병당 54원이 오르면 세금도 29원 인상된다고 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를 근거로 2013년 소주를 통해 약 1조6500억원의 세금을 거뒀으니 소주 값 인상으로 연간 928억원 증세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납세자연맹은 국세청에 소주 가격 인상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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