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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거래소의 대호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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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영화 '대호(大虎)' 는 호랑이 중에서도 왕으로 불리는 산군,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쫓는 이야기다.

조선 최고 명포수부터 이름난 포수들, 그리고 호랑이 가죽을 탐내는 일본군까지.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 호랑이만을 쫓는다.
다른 호랑이나 맹수는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대호라는 공통의 타깃을 향해 서로 다른 목적의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등장인물만 보면 괴수나 애국심를 다룬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스토리 이면을 보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엿보인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최근 영화 대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거래소, 금융투자업계, 정치권이 '한국거래소 기업공개(IPO)' 라는 대호를 둘러싸고 벌이는 상황이 비슷하다.
거래소 상장은 우리나라 증시가 상장되는 대호와 같은 것으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국내에 종합주가지수가 처음 도입된 1964년 이후 50여년간 한국거래소 상장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거래소 상장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우리의 경제 규모를 보면 진작에 됐어야 할 일이지만 거래소 상장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반세기 만에 압축성장을 이뤄내며 시가총액 세계 11위의 시장으로 도약했다.

1965년 우리나라 상장기업 전체의 시가총액은 145억원이었다. 올 하반기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84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보면 코스피시장은 1336조107억원을 기록했다.

65년에 비해 약 9만2100배 커졌다. 하지만 세계 11위권 거래소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상장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경쟁력에 뒤처지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거래소가 올들어 최대 과제로 상장을 내세운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거래소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계획을 주 내용으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이 같은 50년간의 숙원사업을 추진하면서 거래소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법 개정추진에 앞서 금융투자업계, 정치권과 함께 충분한 협의와 연구를 했었어야 했다.

이 과정을 빼고 하다 보니 정작 본게임에 들어가기도 전에 국회 법안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거래소는 혼란에 빠졌다.

진짜 호랑이를 잡을 때처럼 사전 준비와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거래소는 연내 개정안 통과 후 내년 상장 추진이 어려워지자 악수를 뒀다. 대호만을 쫓아도 잡을까 말까 한데, 갑자기 나타난 호텔롯데라는 '대어(大漁)'도 쫓기 시작했다.

그간 다른 기업들이 보호예수 완화를 요구할 때는 외면하더니 이 규정 때문에 호텔롯데 상장이 어려워지자 이 규정을 즉각 완화 조치했다.

거래소는 지난 2일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을 개정,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특수관계인도 경영 안전성과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없을 경우 보호예수를 면제받을 수 있게 했다.

이를 두고 롯데 오너 일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거래소는 한국 증시 상장이라는 대호와 호텔롯데라는 대어를 동시에 쫓으면서 얻은 실익이 없다.

한국 자본시장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투자자 보호 및 이익 증대라는 명분도 잃었다.

이제라도 거래소가 상장이라는 대호 사냥에 성공하려면 지금까지의 과오를 인정한 후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사냥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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