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한파]"육아휴직 써도 될까요?"…구조조정 분위기에 '전전긍긍'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중소 철강업계 8년차 직장인인 서모씨(34)씨는 출산 후 5개월 만에 회사에 복직했지만 결국 사표를 냈다. 딸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출산휴가 3개월 다녀온 지 두 달 만에 결국 회사를 관두기로 한 것. 물론 육아휴직제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쓰는 이는 거의 없어 그야말로 허울뿐이다. 게다가 최근 철강경기가 좋지 않아 인력 감축설마저 돌고 있어 '눈치껏'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중견 유통업체에 다니는 배모씨(35)씨는 최근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1년을 쓰려다가 관뒀다. 회사 정책상 보장되어 있는 제도이지만,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6개월을 쓴 지 1년 반 만에 또다시 휴직하려니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배 씨는 "눈 딱 감고 부서장에게 '지난번에는 6개월만 쉬고 왔지만 이번에는 1년 다 쓰고 싶다'고 말하려는 순간, 부서장이 던진 말 한마디에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부서장이 건넨 말은 이렇다. "이번에는 첫째 때처럼 '길게' 쓸 수 없는 거 알지?"
평상시에도 사용하기 힘든 '육아휴직제'가 경기침체와 연말 재계 구조조정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더욱 사용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올해 조(兆)단위 적자가 발생했던 조선,철강 등 중후장대 업계는 물론이고 중소업체, 유통업체 등 재계 전반적으로 자유롭게 휴직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올해 일부 대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거나 남성 육아휴직제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정작 직원들은 "회사가 적자인판에 어떻게 1년,2년씩 쉴 수 있겠냐"는 반응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이 와중에 남자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는 해도 당장 부서 내에서 '용자(용기 있는 자)'나 '간 큰 놈'이 된다'"고 말했다.
대형조선사인 A중공업은 지난해 육아휴직자는 총 117명이었다. 여성 임직원 수는 전년 931명에서 1156명으로 늘었지만 육아휴직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육아휴직자 대상자에 남성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B정유업체의 경우 지난해 여성 육아휴직 대상자는 220명이지만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은 61명에 그쳤다. 사용률로 따지면 27.7%로 육아휴직 대상자 중 4분의 1가량만 휴직계를 낸 셈이다.
국내 빅3 철강업체 중 하나인 C업체는 육아휴직 사용자가 단 15명뿐이었다. 이 업체의 총 직원은 1만1000여명. 여성 직원은 350여명이다. D업체는 직원 총 1만7000여명에 육아휴직 사용자는 81명이었다. 그러나 이 규모가 육아휴직 1년을 꽉 채워서 사용한 인원인지, 육아휴직 개시한 경우까지 포함된 수인지 명확히 표기되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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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나 자동육아휴직제를 실시하고 있는 곳들은 덜하다. E호텔은 육아휴직 고민으로 직장을 관두는 여성은 거의 없다.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이 의무적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매달 1번씩 보건휴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연차 14일에 보건휴가 12일 등 연간 총 26일의 휴가를 보장받고 있다. F그룹사도 '육아휴직 자동전환제'를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출산휴가가 끝난 여직원들은 별도의 신청 없이도 1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어 눈치 볼 염려가 적다.
그러나 비교적 육아휴직제 사용이 보장된 곳들도 남성들의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G업체의 경우 지난해 육아휴직 대상자는 남성 총 1300명이었지만 이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단 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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