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농어촌상생기금)짜리 딜레마에 빠진 재계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재계가 1조원짜리 딜레마에 빠졌다.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관련, 여야와 정부가 농어민 지원 등을 위해 조성하기로 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기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단체들은 FTA의 조속한 발효를 위해 겉으로는 찬성하는 듯 한 입장을 취했지만 1조원 규모의 기금조성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데다 향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야정이 합의하고 FTA비준안이 통과된 만큼 1조원 기금은 거스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향후 다가올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기금규모와 배분 등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1조원 기금, 갹출규모·방식 고민
정부의 잇단 해명과 반박에도 재계는 1조원을 준조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준조세가 아니며 민간기업과 공기업 등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야정 합의안에 따르면 민간기업과 공기업, 농ㆍ수협 등의 자발적 기부금을 재원으로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 규모의 기금을 모아 농어촌 상생협력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재계 관계자들은 "그간의 관례대로라면 1조원 기금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분담하는데 FTA가 민간기업, 특히 수출 대기업에 수혜가 된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대기업의 부담이 최소 50%에서 70% 가량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분담비율을 60%로 가정하면 연간 600억원씩 10년간 6000억원이 된다. 상위 100대 수출기업을 기준으로 하면 1개사당 연간 6억원. 그러나 수출액과 매출액 등으로 차등화하면 상위기업들이 수 십억원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FTA가 발효가 됐다고 하더라도 당장 업종별,규모별, 지역별로 득실을 따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만 하더라도 한·중 FTA가 발효됐다고 해서 당장의 큰 실익이 없는데다 중국에 생산,판매법인을 두고 있고 FTA의 효과가 한 나라와의 무역이나 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경제의 상황에 따라 FTA효과가 극대화 또는 반감될 수도 있다.
-세액공제·조사면제는 당근인 동시에 채찍
재계는 정부가 세액공제, 동반성장지수 가점 부여 등의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점을 두고 "사실상 준조세를 정부가 인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발적 기부에 대한 헤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뒤집어보면 자발적 기부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기금에 출연하는 기업에는 경제검찰인 공정위의 동반성장평가에 가점을 주고 우수기업에는 하도급조사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겠다는 방안도 논란거리다.
정규돈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브리핑에서 "총액은 있지만 기업별로 할당되는 것도 아니고, 수출기업한테 부과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기업들이 해오던 사회공헌 활동이 기금 체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FTA비준대가로 여야정이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에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고는 시간내에 알아서 잘 풀어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면서 "기부금 관리주체를 특정하고 각종 당근과 보이지 않는 채찍을 내거는 것 자체가 준조세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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