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만난 '전통건축'…지혜와 정신을 읽다
삼성문화재단 50주년 기념전,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오래된 사찰, 궁궐과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전통건축. 그 속엔 다채로운 문화유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얼과 정신이 담겨 있다. 오늘날 일상적 거리를 채우는 현대건축물에서 만날 수 없는 가치다. 우리네 옛 건축을 되돌아보는 일은 옛 것과 새 것의 조화, 지속가능한 공간을 위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정신세계, 우주관과 세계관을 '전통건축'을 주제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삼성문화재단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오는 19일부터 내년 2월 6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 인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진행되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 전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건축공간 열 곳을 선정해, 선조들의 지혜와 옛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 양산 통도사, 순천 선암사를 비롯, 서울 종묘와 궁궐, 수원 화성, 안동 도산서원, 담양 소쇄원, 경주 양동마을 등이다. 현대사진가들의 사진작품 외에도 고미술, 고지도, 모형, 디지털 미디어 등 다매체로 펼치는 대규모 전시다. 불교사찰과 유교문화를 반영하는 왕과 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침묵과 장엄의 세계'라는 주제로 엮어 종교적, 정신적 세계관과 관련시켰다. 궁궐과 성곽, 관아건축을 포함시켜 '터의 경영, 질서의 세계', 서원과 정원, 민가를 하나로 해 '삶과 어울림의 공간'라는 주제로 소개한다.
16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미리 전시장을 둘러봤다. 해인사 풍광은 원로 사진가 주명덕 작가가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는 성철스님 생전에도 해인사 스님들과 교류가 많았던 이로 알려져 있다. 해인사의 외관과 가람 풍경, 스님들의 수행공간과 같은 내부를 비춘 그의 사진 곁에는 18세기 김윤겸이 그린 '영남기행화첩' 속 해인사 전경도 전시돼 있다. 불국사는 문화재 전문 서헌강 작가가 찍었다. 입구와 전각, 사찰 내부 디테일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번 전시의 협력큐레이터로 활동한 전봉희 서울대 건축과 교수는 산지사찰과 평지사찰의 특성을 각각 드러내는 해인사와 불국사의 입체 지형도와 부조 모형을 만들어 소개했다.
구본창 작가는 진신사리가 모셔져 삼보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 통도사를 답사하며 4계절을 담아냈다. 배병우는 사찰의 원형이 잘 보존된 선암사를 흑백으로 담담하게 보여줬다. 홍매화가 핀 담장과 절의 모습이 따뜻하다. '차마고도'로 잘 알려진 박종우 감독은 종묘의 침묵과 장엄함을 5분짜리 영상으로 담아냈다. 길이만 100미터가 넘는 종묘의 웅장함, 전쟁으로 인한 화재로 수차례 중건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시간성, 19칸 49명의 신위가 모셔진 상징성, 왕실 제례 문화가 3채널 스크린 속에 표현돼 있다.
지도와 고미술 자료 등도 놓치기 아쉬운 관람 포인트다. 건축물과 거리, 산과 강으로 이뤄진 수도 한양이 담긴 '한성도'와 우리나라 전체를 포괄한 '동국대지도' 옛 사본을 비롯, 이번에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숙천제아도'가 있다.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 동안 부임했던 중앙과 지방의 관아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화첩이다. 그 일부로 말을 관리하던 곳인 '사복시' 그림이 재미있다.
이준 삼성미술관 부관장은 "사진작가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유서깊은 건축물들이 제대로 보존, 관리되지 못하고 주차장 같은 현대적 편의 시설이나 전통을 어설프게 흉내 낸 건축물들로 부조화를 이루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며 "전통예찬이 형식적인 자화자찬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출판이나 전시, 교육과 비평을 통한 인식전환부터 문화재 보호와 도심의 문화적 재생 등 노력들이 실천적이 결실로 맺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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