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사시폐지' 앞둔 신림동 고시촌은 지금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2년 안에 붙어야죠. 잘 안되면? 글쎄요…. 로스쿨 갈 수는 없고. 한 두푼 드는 것도 아닌데."

헛헛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올해로 4년째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라는 양모(32ㆍ남)씨의 말이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일대, 이른바 '신림동 고시촌'에서 양씨를 만났다. 2015년도 사법고시 제3차 시험(4~5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양씨는 2차 시험(지난 6월)을 통과하지 못했다. 양씨에겐 내년과 후년, 딱 2년의 기회만 남았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사시는 2017년을 끝으로 폐지된다.

양씨를 포함한 고시생 몇몇이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고시원 건물 앞에 모여 담배를 태우거나 커피를 마시며 막막한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중에 기자를 의식한 고시생이 말을 보탰다. "근데, 이렇게 취재해서 기사 쓰면, 달라지는 게 있어요?" 짜증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신을 "3년차, 3년차!"라고 대충 소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로스쿨 들어갈 엄두가 안 나죠. 취지는 좋지요. 하지만 로스쿨을 감당할 능력이 안돼요. 여기(고시촌)는 낭떠러지일 뿐이고."


지나치게 높은 등록금, 어렵사리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을 통과해도 학벌과 집안 배경에 따라 처우가 크게 달라지는, 로스쿨 제도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함축한 말이었다.


허탈함과 불안함, 억울함 등의 감정은 이들의 표정이자, 대학동의 첫 인상이었다.


걱정이 많은 고시생들처럼 동네 분위기는 초라했다. 이미 수 년째 이어져온 침체에 익숙해진 듯도 했다.


올해로 17년째 영업 중이라는 'ㅂ'서점 사장 유모(59ㆍ남)씨는 "하루이틀 얘기도 아니잖냐"면서 "(매출이) 7~8년 사이에 30~4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동 서점들은 '2017년 이후', 즉 사시가 사라진 뒤를 대비하는 분위기였다. 가게 유리창에 법학에 관한 각종 교재와 강의 홍보 포스터가 도배된 모습은 대학동 서점가의 상징이나 다름 없다.


고시촌은 한숨촌, 비싼 로스쿨은 엄두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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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서점 유리창을 살펴보니 '형사법OOO', '민사소송 속성 OOO' 같은 전형적인 '사시 교재 및 강의' 포스터 못지 않게 사시를 제외한 각종 시험의 교재나 강의 포스터가 많이 붙어있었다.


유씨는 "옛날엔 거의 전부 사시 교재들 포스터였다"면서 "사시 교재들이 돈이 좀 되는데,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 동네 변하는 모양새는 서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근처 'ㄱ'부동산 사장인 안모(53ㆍ남)씨는 부동산 경기를 보여준다며 손목을 끌었다. 그는 동네의 가게 앞으로 난 골목 중간 쯤에 자리한 고시원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가 옛날엔 들어가기 힘든 고시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맨 꼭대기랑 그 아래 두 층을 아예 닫았어요. 2층이랑 3층, 이렇게만 운영해요. 방이 (세입자들 거래로) 돌아가는 속도가 늦어지고 공실률이 엄청 높아졌지요."


주민들은 '온전한 사시 시절'엔 2만~3만명에 달했던 고시생이 지금은 불과 수천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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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한 칸 옮기니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사법시험 존치 국민의 뜻이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이미 날짜가 지난 행사를 홍보하는 현수막인데도 철거되지 않았다. 현수막 한 쪽에는 '전국고시원협회', '원룸협회', '독서실협회' 등 몇몇 단체 이름도 적혀 있었다.


'로스쿨과 사시 존폐' 문제가 고시생들만의 문제는 아님을 짐작케 하는 현수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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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1000명이었던 사시 합격 정원은 로스쿨 제도 시행 이후 꾸준히 줄어 올해 150명, 2016년 100명, 마지막인 2017년 50명으로 묶여있다.


2년 뒤에 50명이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나면, 전통적 의미의 '신림동 고시촌' 시대는 30여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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