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하피첩' 보존처리 후 내년 2월 공개
강진 유배시절 부인이 보낸 치마 잘라 만든 서첩…두 아들에게 전한 당부의 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병든 아내 낡은 치마를 보내, 천리 먼 길 애틋한 마음 부쳤네. 오랜 세월에 붉은 빛 이미 바래니, 늘그막에 서글픈 생각뿐이네. 마름질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 자식들 일깨우는 글귀를 써 보았네. 부디 어버이 마음 잘 헤아려서, 평생토록 가슴 깊이 새겨 두기를.'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1810년 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시절 부인 홍씨가 보내온 치마를 잘라 작은 서첩을 만들고 두 아들 학연(學淵,1783~1859)과 학유(學遊, 1786~1855)에게 전하고픈 당부의 말을 적었다. 그리고 이를 '하피첩(霞?帖)'이라 이름지었다. 부인의 치마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자, 부모로서 자식을 생각하는 애뜻한 마음이 담겼다. 총 3첩으로 구성된 하피첩에는 선비가 가져야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등 자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삶의 가치관이 녹아 있다.
13일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은 보물 제1683-2호 ‘정약용 필적 하피첩’(이하 하피첩)을 박물관 1층 영상채널 스튜디오에서 일반 공개에 앞서 언론에 먼저 소개했다. 하피첩은 지난달 14일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돼 박물관에서 7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소장하고 있다. 한 가족의 삶, 가치관, 당시 시대의 모습이 담겨있는 유물, 하피첩은 내년 2월께 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전망이다.
하피첩 3첩 중 1첩의 표지는 박쥐문·구름문으로 장식된 푸른색 종이로 돼 있다. 나머지 2첩은 미색 종이로 장황(裝潢, 서화의 표지장식)돼 있다. 첩의 크기와 표지는 조금씩 달라도 3점 모두 표지 안쪽에 붙는 면지를 붉은색 종이로 사용하고 있어 동일한 시점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푸른 표지의 1첩은 안에 필사 종이에도 동일하게 박쥐문이 그려져 있어 필사한 시기와 첩으로 장황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은 추후 적외선 촬영을 통해 정확한 순서를 추적할 예정이다.
첩 내부에 쓰인 직물은 평직의 비단이며, 바느질했던 흔적도 발견된다. 갈변된 상태로 보이나 미세하게 적갈색을 띄고 있어 하피첩을 만들 때 사용된 치마의 염색 흔적으로 보인다. 이 첩은 제작 이후 한 번도 개장(改裝)되지 않은 상태로 1810년 당시의 첩 장황 양식 및 사용되었던 장식 종이 등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하피첩은 표면 곰팡이, 물 얼룩, 접착제 약화로 발생한 들뜸, 회장(回裝, 가장자리를 가늘게 돌아가며 대는 꾸밈) 분리 등이 확인되며, 이러한 손상 부분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보존처리 할 계획이다.
권선영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는 "문화재 보존팀에서 유물에 해가 없는 친환경 저산소 방식을 이용해 살충처리를 실시하고, 과학적인 조사 및 분석을 토대로 하피첩 직물의 염료를 규명할 예정"이라며 "가역성 있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최소한의 보존처리를 시행하고, 보존처리에 사용되는 종이는 종이섬유분석 및 가공방법 연구를 통해 최대한 유사한 종이로 복원할 계획이다. 접착제는 밀가루에서 밀기울(단백질 등)을 제거한 후 전분만을 남겨 제작한 전통적인 동양의 접착재료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보존팀은 이중 오동나무 상자(외피는 전통 옻칠)를 제작, 그 속에 하피첩을 보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절차를 거쳐 4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보존처리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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