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후 증시 완전개방…첫 황금시대 개막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애널리스트들의 '황금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한도 폐지와 증시 완전개방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정보기술(IT)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에 능통한 애널리스트가 필요했고, 증권사마다 영입 경쟁이 이어지며 연봉은 억대까지 치솟았다. 증권사들은 저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 디지털, 컴퓨터산업 등을 전공한 공대생을 우대한다"는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황금기는 짧았다. 2000년 3월 코스닥지수가 2834.4(현재지수로 환산)로 정점을 찍은 후 연말엔 525.8까지 폭락하던 '인터넷 버블 붕괴' 이후 증권가엔 구조조정 회오리가 몰아쳤다. 시장이 침체국면에 접어들어 인력 감축은 피할수 없었고 고액 연봉자인 애널리스트가 주요 타깃이 됐다. 심지어 리서치센터에 근무하는 애널리스트를 지점 영업직으로 발령낸 경우도 있었다. 당시 국내 44개 증권사들은 2002 회계연도(2002년4월∼2003년3월)에 6146억원의 세전손실을 기록해 전년의 1조674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자동차ㆍ조선ㆍ화학 업종이 흥하면서 다시 애널리스트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해당 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의 연봉은 3억~7억원 수준에 달했다. '스타 애널리스트'라는 수식어까지 만들어졌으며, 이들에게 물밑 작업을 벌이는 증권사들의 스카우트 경쟁도 다시 시작됐다. 한 베테랑 애널리스트가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고 외국계 증권사로 넘어갔다는 얘기도 여의도에 전설처럼 퍼졌다. "내 리포트 하나에 기업 하나 죽고 사는 건 시간문제"라며 애널리스트들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시련과 오바마 집권 이후 2차전지가 주목받으면서 대세 업종은 바뀌었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강세 종목이 수시로 바뀌면서 주도주를 일컫는 '차화정(자동차ㆍ화학ㆍ정유)'과 '전차(電車)군단', '7공주(LG화학ㆍ하이닉스ㆍ제일모직ㆍ삼성SDIㆍ삼성전기ㆍ삼성테크윈ㆍ기아차)' 등의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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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들은 업종의 흥망성쇠에 따라 울고 웃었으며 이직도 잦았다. 당시 업종이나 주요 종목의 주가와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은 같이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주류 업종을 박차고 나와 4~5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뭉쳐 투자자문사를 세우거나 아예 전업투자자(애미)로 변신하는 경우도 금융위기 회복세에 접어든 2010년 전후로 두드러졌다. 당시 애널리스트들의 과도한 인력 이탈로 증권사들이 이례적으로 애널리스트 채용에 힘을 냈던 것도 이 시기였다.


용대인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이 2011년 저술한 '애널리스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는 책이 출간했을 당시가 직업으로서의 애널리스트가 가장 정점에 달했던 때다. 30대 초반에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는 말에 직업ㆍ결혼 선호도 상위권에 항상 애널리스트가 올라 있었다. 하지만 2013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증권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 칼바람이 시작되면서 사실상 애널리스트의 마지막 황금기는 그렇게 끝이났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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