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로 영전되는 법관들…'흔들리는 3권분립'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또 한명의 고위 법관이 국가기관 수장으로 임명됐다.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성호 인권위원장 이야기다. 고위 법관들이 전관예우를 누릴 수 있는 변호사도 아닌, 행정부 고위직을 잇따라 선택함에 따라 3권분립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들어 현직 고위 법관들이 잇따라 행정부 소속 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2012년 12월 이성보 서울중앙지법원장이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옮긴 데 이어 2013년 12월에는 황찬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2014년 4월에는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됐다. 이성호 인권위원장을 합할 경우 최근 4년간 4명의 현직 고위 법관이 정부의 기관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이 때문에 고위 법관이 마치 정부의 요직으로 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사법의 정치화'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놓이게 됐다"며 "임명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나 비전에 봉사할 수 있는 사법부 인물을 행정부의 요직에 임명하고, 이에 '현직' 고위 법관들이 주저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실은 임명권자가 정책이나 정치적 의지의 실현수단으로 사법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중앙정부 고위직 인사를 통해 사법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다.
해외에서는 법관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우리처럼 흔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을 통해 "(주요 선진국 법관의 경우) 한번 법관이면 끝까지 법관으로 남는 것이며, 중도에 나가는 것은 수치 혹은 불행으로 간주 된다"고 소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행정부가 마음에 드는 판사들을 영전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행정부가 법원인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사법부의 독립이나 판사의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련의 인사에 대해 "마치 영전을 하고 싶으면 코드를 맞추라는 사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법관은 평생 법관으로 일하다 퇴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현직 고위 법관들이 국가기관 고위직에 뽑히는 것이 관행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같은 현상은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 교수는 고위법관들의 이같은 3권분립으로 보장한 사법부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위 법관들이 행정부로 자리를 옮길 경우) 행정부가 위법한 일이 있어 행정소송이 벌어질 경우 후배 법관들이 선배를 예우하는 판결을 내리거나 내렸다는 의혹을 살 수 있다"며 "이는 3권분립 침해일 뿐 아니라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뿐만 아니라 "향후 법관들이 행정부 고위직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법관 자리를 행정부 고위직으로 가는 중간 정거장쯤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행정부가 가해자가 될 때 과연 (자신을 뽑아줄 지 모르는) 행정부 편을 들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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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임 교수는 이같은 법관들이 행정부행을 막지 않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양 대법원장은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법부 수장으로서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직 법관출신인 이 인권위원장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컸다. 법에 따라 판결을 했던 사람이 법을 넘어서서 국민들을 인권을 지켜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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