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33년째 군을 기록중인 서능원원사(사진 왼쪽).

군생활 33년째 군을 기록중인 서능원원사(사진 왼쪽).

AD
원본보기 아이콘

서능원원사(사진 가운데)가 처음 카메라를 잡아본 하사시절 사진

서능원원사(사진 가운데)가 처음 카메라를 잡아본 하사시절 사진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남들이 꺼린다는 전방. 하지만 육군 정훈부사관 서능원 원사는 강원도 전방이 오히려 더 친숙하다. 서 원사는 진짜 고향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전방에서 보낸 탓이다.


서 원사의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다. 2남 2녀중에 차남이었던 서원사의 집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부모님들은 서원사의 고등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고민이 쌓여갔다. 친형도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빠듯하게 야간대학교를 다녔던터라 선뜻 고등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길은 열렸다. 고등학교 3년동안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군기술위탁장학생제도였다.

이 제도 덕분에 동양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서 원사는 고등학교 시절 전자기기를 전공하면서 사진촬영기법도 배웠다. 처음 잡아본 카메라였지만 서원사는 어색하지 않았다. 사진에 재미를 느낀 서원사는 학교 교지까지 담당하게 됐다. 서원사에게 또 다른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18세의 나이였던 1983년에 하사로 임관한 서원사의 첫 부대는 강원도 양구 21사단이었다. 부사관 막내였던 시절 서 원사 손에 쥐어진 것은 필름카메라와 하루에 24컷을 찍을 수 있는 필름 한통이 전부였다. 지금같이 디지털카메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수 가 없었다. 한컷 한컷 신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사진을 현상하면 노출이 부족한 사진, 흔들린 사진 등 실수연발 투성이였다. 기록사진을 찍어야 했던 정훈부사관에게는 치명적인 실수들이었다. 서 원사는 밤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잘 찍고 싶었다.

AD

서원사 찍은 사진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도 있다.바로 강원도 양구군 위치한 1200m 높이의 가칠봉 점등식 행사장면이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산바람을 타고 불을 밝힌 등불은 그렇게 밝을 수 가 없었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1980년 중반 평화의 댐 건설이 한창이던 여름에 지뢰탐색작업을 사진에 담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현장은 그야말로 지뢰밭이었다. 북한의 목함지뢰와 아군의 지뢰가 물에 떠 내려와 한발한발 조심스러웠다. 카메라의 셔터도 멈추지 않았지만 긴장한 탓에 흐르는 땀도 멈추지 않았다.


서 원사는 군장병들의 진솔한 마음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서울지역인 56사단에 근무할 때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장애인을 등에 업고 북한산을 올랐다. 당시 정상에서 연을 날리며 소원을 빌었다. 나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앞으로 국민들을 위한 군을 카메라에 담게 해달라고.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