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 생태계]금융신뢰 엉망…'아큐파이 여의도' 걱정되네
금융사, 고객이익 증진 신경써야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지난 201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하자 전세계 금융 시장은 들끓었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팔면서 부당한 내부거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1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힌 혐의였다. 140년이 넘은 금융 공룡은 궁지에 몰리자 이듬해 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투자내역을 공개하며 고객과의 신뢰회복에 나섰다. 골드만삭스는 "보다 투명하고 신뢰를 주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선언했다. 공룡이 두려워한 것은 '신뢰가 없다'는 시장의 낙인이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해초 한 자리에서 "금융은 신뢰를 먹고 자라는 산업"이라고 했다. 그만큼 금융사들에게는 신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금융은 고객의 돈을 지렛대 삼아 더 큰 이익을 추구한다. 고객의 신뢰가 없으면 금융업도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국내 금융 산업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진 수준이라는 점이다. 올 3월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금융신뢰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소비자의 금융신뢰지수는 86.2점으로 나타나 지난해에 이어 낙제점을 이어갔다. 신뢰지수는 100점 기준 200점 만점인데, 100점 미만이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세부 항목별로는 금융감독 효율성 60.9점, 금융회사 경영상태 74.9점, 금융종사자 신뢰도 90.6점, 금융회사 고객서비스 93.1점 등이었다. 9개 항목 중 100점을 넘긴 건 하나도 없었다. 조사를 진행한 서병호 금융연구원 박사는 "특히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는 점이 문제"라며 "정책 수립을 할 때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과 당국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건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고, 최근 수년간 은행, 증권, 보험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들이 금융의 신뢰를 끌어내렸다. 동양 사태와 KB사태, 정보유출 사태 등 문제를 연달아 터뜨리면서도 고액 연봉을 챙기는 금융업을 보며 고객들은 분노했다. '내 돈 갖고 사업하고 문제 생기면 정부가 공적 자금으로 막아주는데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를 두고 이병윤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자금으로 영업하기 때문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며 "내돈으로 이익을 낸다는 거부감이 들어 금융사 임직원의 높은 보수수준에 공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의 주범이면서도 천문학적인 보수를 챙기는 월가 최고경영자(CEO)에 분노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2011년 벌어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안으로는 금융사의 체질 개선이 우선 꼽힌다. 단기적 성과 달성에 연연하지 말고 '고객의 이익 증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핵심성과지표(KPI)에 치중한 성과 측정, 미흡한 기술개발(R&G) 투자, 지배구조 불안정 등이 개선해야 할 요인으로 언급된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는 "감독당국이 재량권을 남용해 금융사 CEO의 임기를 흔들면 금융사의 미래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투명한 재량권 행사를 강조했다.
금융 소비자인 고객들 스스로의 노력도 요구된다. 신뢰성 높은 금융사를 선별하고 힘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금융 수준 역시 높아야 한다. 동양 사태 때 일부 소비자는 높은 이자수익에 취해 수 개월 단위 투자 행태를 반복했다. 금융권 신뢰의 추락에는 고객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올해부터 금융회사와 학교를 연결하는 '1사 1교 금융교육'을 본격 추진한다. 오순명 금감원 소비자보호처장은"금융교육 강화로 현명한 금융소비자를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핀테크나 인터넷전문은행을 놓고는 보안이 관건이라는 시각이 많다. 금융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좋지만 자칫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나마 남아 있는 금융 신뢰마저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직접 지점에 방문하지 않고도 통장 개설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보안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도 보안 문제를 신경쓰고 있다. 한국금융보안원은 올해 핀테크 보안기술 지원사업을 중점 추진할 계획인데, 금융 정보보호관리체계(F-ISMS) 인증 평가와 핀테크 신기술 보안검증 업무 등이 주를 이룬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 크라우드 펀딩 등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를 활성화할 것"이라며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구축과 정보공유체계 마련 등을 통해 핀테크 시대의 금융사 보안역량이 실질적으로 강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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