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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아마릴리스 가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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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아마릴리스 가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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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그저 먹는 건 아닌가 보다
해 다 저물 무렵 아마릴리스 꽃대궁이
불 꺼진 꽃 두 송이 받쳐 들고 중얼거리며 서 있다
사는 동안
나도 누구를 받쳐주거나
한 사람 가슴 뜨겁게 해준 적 있었는가
투덜투덜 생의 뒤안길 더듬어 보니
시부모님에 대한 내 순정 서럽게 울고 있다
그 울음 달래다 보니 병치레하다 먼저 떠난
그분들이 오히려 날 받쳐준다

외사랑, 그 순수시절이 그립다

-정숙 '한밤중의 손님맞이'

'사는 동안 나도 누구를 받쳐주거나 한 사람 가슴 뜨겁게 해준 적 있었는가'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안도현의 잊지못할 자성의 변주이지만, 그 시의 진저리는 이토록 다른 시 속으로 다시 깊이 스며들어 저마다의 뉘우침과 깨달음으로 자장을 이루는 것이리라.

이 시인이 바라본 아마릴리스 꽃대궁의 풍경에 눈을 오래 둔다. 말라버린 꽃 두 송이를 끝까지 받치고 있는, 집요한 사랑의 애프터서비스를 발견한 정숙의 눈시울에 마음이 동한다. 생생한 현재진행형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이미 끝나고 할 일은 다 하고 볼 일은 다 보고 이제 파장(罷場)의 시절인데도 거두지 않는 외사랑. 내게 그런 사랑이 과연 있는가.

정숙은 시부모께 드렸던 마음을 기억해낸다. 그러면서 다시 아마릴리스 꽃대궁을 바라본다. 시든 꽃을 아직까지 껴안고 있는 이는 내가 아니라, 저분들이구나. 그 마음의 지주에 얹혀 지금 내가 살아가는구나. 그 곱고 서러운 역발상에서 시는 가만히 떨고 있다.

시인은 시의 제목 아래에 가시리의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올세라 셜온 님 보내옵노니 가시는듯 도셔오쇼서'의 후반부 가사를 붙여놓았다. 사람은 꽃이 아니지만 사람도 꽃과 매한가지라는 걸 저 아마릴리스로 발견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꽃이 계절이 되면 다시 돌아오듯, 그 마음도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오시란 얘기다. 그렇게 읽으니 이 시는 '아마릴리스 가시리'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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