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립운동가'에 류인식 선생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6월의 독립운동가'에 안동의 혁신유림인 동산 류인식(1865~1928년·사진) 선생이, '6월의 6ㆍ25전쟁영웅'에 아들 3형제를 나라에 바친 조보배 여사가 선정됐다.
29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류인식 선생은 경북 안동 예안에서 태어나 퇴계 선생의 정통을 이은 정재학파 가문에서자랐다. 1895년 일제가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오백 년 종사가 망하려는데 삼천리 강역에 한 명의 의사도 없단 말인가"라고 비분강개하며 청량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김동삼, 이상룡 선생과 근대적 중등교육과정의 협동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협동학교 졸업생들은 3ㆍ1운동 등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11년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로 이주해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등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했다. 1912년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일시 귀국했다가 일제에 체포된 후 국내에 머물렀다. 선생은 1927년 신간회 안동지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발히 활동하다 이듬해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삶을 마감했다. 정부는 공적을 기리어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6ㆍ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조보배 여사의 아들은 북한군의 자주포를 육탄 공격으로 막아 춘천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 심일 소령, 경찰로 근무하며 치안 유지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던 경찰 심민, 17세의 어린 나이에 조국을 위해 학도병으로 자원 참전한 심익이다.
맏아들 심일 소령은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차포중대 소대장으로 춘천지구 옥산포 전투에서 자신을 포함한 5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화염병과 수류탄을 들고 적의 자주포를 향해 육탄공격을 감행해 북한군 자주포 2대를 격파했다. 1951년 1월 제7사단 수색중대장 임무 수행 중 영월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정부는 1951년 위관 장교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소령으로 1계급 추서했다. 육군은 2002년 '심일상'을 제정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둘째 아들 심민은 경찰로 근무하며 6ㆍ25전쟁 중 치안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32세이던 1960년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 근무 중 업무 과로에 따른 심장마비로 순직했다. 셋째 심익은 서울고 재학 중에 전쟁이 일어나자 만 17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원참전해 낙동강 방어전에서 치열한 전투중 전사했다.
조 여사는 강원도 일대 수만 평의 임야를 개간해 이를 제대군인들에게 삶의 터전으로 제공했다. 제대군인과 상이 국가유공자 정착촌 건립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마련되도록 애쓰는 한편, 자신의 땅을 현충탑 부지로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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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쟁기념관은 공군 발전에 공을 세운 최용덕 전공군 중장을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898년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난 최 중장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따라 중국으로 망명해 1920년 중국 육군군관학교와 공군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의 총무처장, 참모처장,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해방 후 공군 창설 주역 7인의 한 명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조선경비대 보병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같은 해 7월 육군항공부대 사령관으로 보임돼 항공분야 체제발전과 항공요원 양성에 기여했다.
초대 국방차관에 임명되어 국군조직법 초안 작성 때 공군 독립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6ㆍ25전쟁 당시 공군사관학교장으로 김포지구 경비사령부를 편성해 김포기지를 방어했다. 1952년 제2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해 휴전될 때까지 공군의 항공작전을총지휘했다. 1953년에는 각종 항공기 증가에 따라 제 10전투비행전대를 전투비행단으로 승격시키는 등 공군력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리어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추서했다. 1969년 8월 72세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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