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돌아온 월街의 봄
[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 월스트리트 인근의 주코티공원. 금융위기의 공포와 고통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2011년 9월17일 월스트리트를 비난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Street) 시위'를 했던 곳이다. 요즘 이곳에 시위대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점심시간만 되면 젊은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점심을 마치고 잠시 산책하거나 머리를 식히는 금융계 종사자들이다. 인근 가게에서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사와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며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 상당수도 금융업계 직원들이다. 지난 22일 이곳에서 만난 헤지펀드 직원 브라이언 그랜(27)씨는 "요즘 업무가 부쩍 늘어나서 평일 야근은 물론 휴일에도 회사에 나가야 할 때가 많다" 고 말한다.
2008년 9월15일.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이자 158년의 관록을 자랑하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날이다. 이날 뉴욕 맨해튼 리먼브러더스 본사 건물에서 개인 용품을 손에 들고 황망히 회사를 빠져나오는 직원들의 모습은 이후 월스트리트에 몰아닥칠 대규모 감원과 침체의 전조에 불과했다. 글로벌 경제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월스트리트에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만들고 증폭시킨 탐욕의 주범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그런 월스트리트가 최근 금융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활력을 회복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에 힘입은 증시와 채권시장의 활황이 거의 7년 만에 '봄'을 불러 왔다. 봄의 기운은 증시를 넘어 월스트리트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명 금융업체들이 줄줄이 입주해 있는 맨해튼 소재 월드파이낸셜센터의 사무실 공실률은 금융위기 직후 41%까지 치솟았지만 최근엔 5% 미만으로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도 급등했다. 월스트리트 인근 워런스트리트에 위치한 방 2개짜리 고급 아파트는 400만달러를 내도 매물이 없어서 구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 고액 연봉자들을 중심으로 실수요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4년 전만 해도 미분양 상태였고 250만달러면 살 수 있었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NYT)는 월스트리트의 주요 투자은행들이 올해 초 5년 만에 연 7만달러(7635만원) 선이던 신입사원 기본급을 8만5000달러로 올렸다고 전했다. 민간 조사업체 머저스 앤 인퀴지션도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이 1년 차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을 14만2000~15만2000달러 선으로 올렸다고 최근 발표했다. 요즘 월스트리트의 2년 차 직원 연봉은 18만달러 정도이며 3년 차에는 평균적으로 21만5000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도 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뉴욕 증권업계 고용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증권업계 일자리는 전년보다 1.4%(2300개) 늘어 16만7800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보너스 규모도 전년도에 견줘 3% 늘어난 285억달러로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 같은 변화가 미국 명문대 출신 인재들의 발길을 다시 월스트리트로 끌어들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가 국민적 비판과 관련 규제 강화로 고전하는 사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업체들이 아이비리그 출신 인재들을 적극 유치해 왔다.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MBA)의 경우 2011년 졸업생 중 40%는 월스트리트로, 10%는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2013년엔 그 비율이 27%대 18%로 좁혀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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