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의 발견'은, 동서고금의 작품을 새롭게 읽어내는 예술인문학 노트입니다.
나는 마흔여덟 살에 죽었고, 그즈음 어느 이른 봄날 마지막 나를 그렸다. 평생에 걸쳐 마치 내 생의 전모를 담으려는 듯 치열하게 나를 그려왔지만 그날 이 그림을 그릴 무렵엔 까닭 모를 분노에 지쳐있었다.
나의 그림과 나의 뜻을 당대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오우가(五友歌)'의 카랑카랑한 운율을 핏줄 속에 키운 자이며 또한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로 그 실학적 형안(炯眼)을 암암리에 전수해준 자이다. 나는 세상으로 향한 입을 닫고 눈을 닫았다. 다만 그림으로 입을 열고 눈을 부릅떴다. 눈 밝은 후세의 어떤 이들은 나를 알아주리라. 백동거울 속에 있는 나를, 나는 서양의 나르키소스처럼 들여다보았다. 여러 달에 걸쳐 나는 오직 이 그림에 매달렸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 눈썹은 평사낙안(平沙落雁ㆍ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의 부드러운 날개를 그렸고, 그 안에 한 치 흐트러짐이 없는 눈은 봉안(鳳眼ㆍ봉황의 눈)으로 세상의 옳고 바른 것에서 눈을 떼지 않겠다는 결연한 시선을 담았다. 눈 주위에 난 달무리 같은 테두리는 안경을 쓴 자국으로 내 치열한 독서의 이력을 숨겨놓은 것이다. 묵직하게 언덕을 이루며 내려온 콧날은 나의 고집이며 양옆으로 갈라진 법령과 팔자로 흘러간 수염은 내 평생 공경을 존재의 집(恭齋)으로 삼고자 한 부드러움을 담았다. 그러나 그 수염 아래 굳세게 다문 입은 세상을 향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심경이 숨어 있다. 흐르는 세모(細毛)는 바람이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염 스스로가 허공에 길어내며 뻗어 나가는 형상이다. 왜냐하면 신체발부는 곧 정신이며 기개(氣槪)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온 영화 '관상'의 포스터에 나온 송강호의 얼굴은 내 얼굴을 흉내낸 것이다. 나의 관상이 강해보였던가. 나의 시대엔 선비가 자화상을 그리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역사 속에 파묻힌 나를 각(刻)을 새기듯 새겨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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