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북소리는 멈추지 않는다…獨 대문호 귄터 그라스 별세
소설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나치 등 독일 현대사 참회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소설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의 대문호 귄터 그라스(사진)가 13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인근 뤼베크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7세.
귄터 그라스는 1959년 발표한 그의 첫 장편소설 '양철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스로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나치 점령하에서 2차대전 종전 후에 이르기까지 독일 현대사의 굴곡을 촘촘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으로 귄터 그라스는 게오르크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양철북'은 1979년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귄터 그라스는 1927년 10월16일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단치히는 팔트해 연안에 위치한 폴란드의 항구도시로, 현재는 '그단스크'로 불린다. 식료품상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는 열일곱살 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부상을 입고 미군 포로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1952년 베를린 미술학교에 입학해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는 자신의 책 표지를 스스로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54년 서정시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문단에 입문한 그는 같은 해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집단인 '47그룹'으로 활동했다.
그가 '양철북' 후속작품으로 발표한 '고양이와 쥐(1961)', '개들의 시절(1963)'은 '양철북'과 함께 '단치히 3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귄터 그라스는 1991년 문학잡지 파리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단치히 3부작'의 핵심은 '독일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경험했는가'이다. 그 당시 나는 나치 치하의 상황과 그 원인, 파생된 문제들을 다뤄야만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에서 나치의 광기를 고발하고 반성을 촉구한 그가 열일곱살 때 나치에 복무한 사실이 2006년 뒤늦게 알려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그는 "나는 평생 이 문제를 떠나지 않았고, 이 문제와 함께 있었다"며 심적 고통을 토로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귄터 그라스는 수많은 작품과 사회적 발언을 통해 독일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1960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가입해 핵무기 반대, 인종차별 철폐 등을 주장했고,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위해 그의 연설문을 전담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동독이 서독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에 줄곧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200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한국이 물리적이 아닌 화학적 통일을 이룰 것을 조언했다. 가장 최근인 2012년에는 이스라엘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이란 시를 발표해 또 한 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가 2005년 실시한 '현존하는 독일인 중 최고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던 귄터 그라스의 타계 소식에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60) 독일 총리는 "그라스는 독일 전후 역사를 보듬고 주조하는 데 예술적으로, 또 사회·정치적으로 헌신했다"고 밝혔다.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67)는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를 언급하며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인이 숨졌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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