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과정 자체가 음악" 40주년 기념 앨범에 신곡 두 곡 발표

한대수의 1집 '멀고 먼 길'이 올해로 발매 40주년이 됐다.

한대수의 1집 '멀고 먼 길'이 올해로 발매 40주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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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미국에 밥 딜런(73)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한대수(68)가 있었다. 1968년 스무살의 한대수는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던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무대로 데뷔했다. 당시 유명한 팝송을 번안해서 부르는 게 유행이었는데, 장발을 한 그는 특유의 거친 음색으로 과감하게 자신의 자작곡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최초의 히피'의 탄생 순간이었다.


군 제대 후 1974년, 그는 한국 최초의 포크록 음반으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데뷔앨범 '멀고 먼 길'을 발표했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오/ 물 좀 주소('물 좀 주소')",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행복의 나라')" 등 그의 가사는 시적이고 아름다웠지만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행복의 나라'는월북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한대수의 음악은 그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생명력이 길었다. 2007년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1집 '멀고 먼 길'은 8위에, 3집 '무한대'는 82위에 올랐다. 이달에는 그의 데뷔앨범 발매 40주년을 맞이해 기념 앨범과 헌정 공연이 준비돼있다. 현재 한국 록을 대표하는 전인권, 강산에, 윤도현에서부터 조영남, 이상은, 호란, 이현도, 몽니, 장기하 등 동료 및 후배들이 직접 한대수의 음악을 다시 불렀다.


한대수 데뷔앨범 발매 40주년 기념 앨범의 제목은 '리버스(Rebirth)'이다.

한대수 데뷔앨범 발매 40주년 기념 앨범의 제목은 '리버스(Rebirt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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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대수는 "섹스 스캔들이 난 것도 아닌데, 많이들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하하하'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내 나이가 예순 여덟인데, 나와 비슷한 나이의 록커들은 이미 많이들 죽었다. '비지스'에서도 '배리 깁' 한 사람만 남아있고, '톰 존스'도 목이 아파 더 이상 노래를 못하고...나도 이번이 마지막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공연'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이번 앨범의 제목은 재탄생을 의미하는 '리버스(Rebirth)'이다.

"내가 살아온 과정 자체가 음악"이라고 말하는 한대수는 이번 앨범에 신곡도 두 곡 포함시켰다. 하나는 '마이 러브(My love)'이고, 나머지는 '나는 졌소(I Surrender)'이다. '마이 러브'는 46년전 그가 고등학생일 때 쓴 곡이다. "내 자취방에 와서 낡고 더러운 청바지를 빨아주던 한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나는 졌소'는 "범죄, 테러, 전쟁 등의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인간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곡"으로 '우리 모두는 패배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후배들의 헌정곡과 신곡으로 구성된 이번 기념앨범은 팬들과 각계각층의 소셜 펀딩으로 제작됐다.


앨범 발매와 함께 오는 25일과 26일에는 대규모 헌정 공연이 준비돼있다. 이번 공연을 성사시킨 정창훈 엘지아트센터 대표(49)는 "이미 거장인 선생님의 일대기와 업적을 재조명하고 싶었다. 7080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역대급 공연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맡은 강산에(51)는 "나의 20대를 지탱해준 건 한대수 형님의 음악"이라며 "단어 선택, 가사의 표현 등 여러 가지가 나에게 영감을 줬다. 1990년대 초반에 처음 만났을 때, 시디에 사인을 요청하니까 '강산에, 당신은 미쳤어!'라고 적어주셨는데, 그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한대수는 어린 시절 핵물리학자인 아버지가 실종되고,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한국과 미국을 왔다갔다하며 파란만장한 10대를 보냈다. 1961년 고교시절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실종됐던 아버지를 찾게 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당시 머나먼 타국의 땅에서 가난하고 분단된 고국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가 바로 '행복의 나라'다. 군 제대 후 발표한 1집과 2집 앨범이 '체제 전복적 음악'이란 이유로 전량 회수 조치를 당하자 그는 크게 상심하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최근에 나온 그의 자서전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에서 그는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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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곡이 나를 찾아온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이 나의 고시원을 감싸고 있을 때 곡은 나의 영혼을 침범해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래서 나는 작곡한다. 범죄와 끔찍한 테러로 인간이 이성을 잃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평화의 노래를 '천천히, 꾸준히, 끝까지' 불러야 한다."


'영원한 히피'로 살 것 같던 한대수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는 딸 양호(9)의 탄생이다. 스물두 살 어린 몽골계 러시아인 아내 '옥사나'와의 사이에서 얻은 늦둥이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화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결혼 전에는 자유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딸을 낳고 나니까 자유에도 굉장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이 오십에 아이 낳고 인생을 다시 느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고, 아이가 스승이 되고 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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