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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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지난달 말 마감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회원국 모집에서 미국의 견제에도 '흥행 대박'을 거둔 것은 말 그대로 '획기적'인 사건이다.


'미국의 푸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과 한 몸으로 움직이던 영국이 미국의 뜻을 거슬러 신청서를 냈다. 미국의 지역별 맹방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 다수가 신청했다. 기껏해야 아시아 중심으로 20여개국에 그칠 것 같던 신청국 수가 전 세계에 걸쳐 50개국을 넘었다. 그러자 신청서를 안 낸 일본은 물론 미국도 창립회원국이 아닌 일반회원국으로라도 가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각각의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국제기구의 창립과 운영을 주도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아직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에 우회적으로 대항할 '지경학적' 무기를 갖게 됐다. 미국이 '최대주주'인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과 사실상 그 '자회사'로 일본이 '위탁경영'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자기 위상 관리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AIIB는 중국이 동시에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육ㆍ해상 실크로드와 더불어 미ㆍ중 양강체제(G2)에서 중국 측의 물적 토대를 두텁게 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는 우리가 사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흔들 잠재력이 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접선에 놓인 우리나라는 종전과 질적으로 다른 기회와 위기에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AIIB 가입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미ㆍ중 양쪽으로부터의 러브콜은 축복일 수 있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회를 너무 티 나게 강조하다보니 위기에 민감한 사람들을 자극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일어선다'는 '화평굴기'를 내세운 중국이 그 구체적 수단으로 AIIB와 일대일로 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마당에 우리가 위기에만 민감할 일도 아니다. 그 '굴기'가 과연 화평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에 따른 기회를 활용하면서 그것이 진정으로 화평한 것이 되도록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중국 등 신흥국 발언권을 높여주는 IMFㆍ세계은행ㆍADB 지배구조 개편을 저지해온 보수세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이들 국제기구에서 소박을 당하는 것을 더 참지 못하고 딴 살림을 차리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늦기 전에 AIIB에 가입해 글로벌 규준에 맞는 구성과 운영을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명예소장도 '밖에서 투덜대기'보다 안에 들어가 투명성을 주장하든 인권보호를 요구하든 하라고 미국 정부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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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에 비추어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달리 AIIB에 창립회원국으로 가입하겠다고 신청한 것은 잘한 일이다. 창립회원이 일반회원보다 할 수 있는 역할도 많고, 얻을 수 있는 이익도 크다. '미국의 뜻을 거슬렀다'는 점을 찜찜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사전협의를 안 했을 리 없고, 미국이 보편타당한 반대의 명분을 갖고 있지도 않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AIIB에서 북한에 대한 투자와 관련해 핵개발이나 인권 문제가 거론된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여기서도 경색된 남북관계가 걸림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한 투자기구로 국제사회에 제안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은 아무래도 재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이 구상은 추진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이것도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AIIB로 갖고 들어가 거기서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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