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디지털 세상, 'Delete' 권리를 허하라
신간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포뮬라 원 레이싱을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IAF)의 회장 맥스 모즐리(74)는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젊은 여성들과 함께 있는 자신의 반라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8년 불법적으로 유출된 모즐리의 음란한 파티 장면 사진이 지금까지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모즐리는 상당한 돈을 지출하면서 전세계 수백 개의 웹사이트들을 상대로 사진 삭제를 청구해 승소했다. 하지만 이미 널리 퍼져버린 사진을 모조리 지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2012년 모즐리는 향후 해당 사진이 검색되지 않도록 '사전 검열'을 해줄 것을 구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후 삭제'는 가능하나, '사전 검열'은 기술적으로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한 번 인터넷에 유출된 사진이나 동영상, 개인정보는 삽시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퍼져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인터넷은 "복제와 유통이 자유로운 공간"이며, 그 내용이 "개인의 치부일지라도 무차별 확산을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이 나서서 일일이 정보를 지우는 데에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완벽한 삭제'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광대역 LTE 서비스와 기가 인터넷 등 초고속을 자랑하는 지금의 통신환경에서 잘못된 개인정보 유출은 모즐리 회장의 사례처럼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올 초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이 터졌을 당시, 해당 보육교사에 대한 잘못된 신상털이로 사건과 무관한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일도 발생하는 등 인터넷 마녀사냥의 폐해 역시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과거에 별 생각없이 쓴 댓글이나 게시물이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아 주홍글씨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디지털 낙인'이 속출하면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알 권리'만큼이나 '잊혀질 권리'도 중요해진 것이다. 일본 검색 시장 1위 업체인 야후재팬은 지난 달 30일 '잊혀질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삭제를 요청한 사람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개인정보 침해가 명백하면 해당정보를 삭제하겠다"는 것이 야후재팬의 입장이다. 성적 동영상, 개인 병력, 집단 괴롭힘 피해사실 등에 대해서는 개인의 '잊혀질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장하되,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유명인사 등과 관련된 정보는 신중하게 판단한다는 세부 지침을 세웠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도 '잊혀질 권리'를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웹 사이트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잊혀질 권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는 전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신간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저자 송명빈(46)씨는 '잊혀질 권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디지털 소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디지털 데이터에도 생성자가 소멸 시기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해서, 작성자 스스로가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물이 업로드되는 순간, 그 유통과 삭제의 전 과정은 서비스 사업자의 권한이 된다. 내가 쓴 글과 사진이 일단 다른 사이트로 퍼날라지면, 그 다음 과정은 속수무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소멸' 특허를 취득한 저자는 "디지털 주권이 생성자에게 온전히 되돌아가야 옳다"며 주장하는 동시에 "의미없이 계속 늘어나는 데이터를 모조리 보관하기 위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들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한 정보가 잘못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스마트 기기 별로 다양한 예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중고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거래할 때는 반드시 메모리칩을 제거해야 하며, SNS 등에서 가족이나 친구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게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도 백신 앱을 꼭 설치하고, 블루투스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꺼두는 것이 좋다. 또 '신상 털림'을 막기 위해서는 각종 사이트에 동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발신인이 불분명한 이메일을 확인할 때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풀어낸다. 다만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이 책이 정작 당사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남긴 채 잊혀져가던 사건들을 다시 들추어낸다는 점에서는 아이러니하다.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가 많이 실려있지만, '잊혀진 권리'에 대한 논쟁과 대안에 보다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못한 점 역시 아쉬운 점이다.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 송명빈 지음 / 베프북스 / 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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