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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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던' 발간한 히라노 게이치로
긍정적·부정적 정체성 모두 나의 실체
즐거운 자아에 집중하면 자살도 예방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진정한 나'란 단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좋아하는 면도 있고, 싫어하는 면도 있다. 모두가 '나'다. 그 속에서 좀 더 괜찮은 '나'를 생각하며 자신을 긍정해 나가는 건 어떨까."


지난 1월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 최근 공상과학소설 '던'을 한국어판으로 연달아 펴낸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40). 일본에선 2009년 소설을 먼저 펴냈고, 이후 2012년 에세이가 나왔다. 한국에서 에세이를 먼저 낸 것에 대해 그는 "소설 '던'에서 '나'라는 개념이 보다 쉽게 읽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게이치로는 '분인'(分人)이란 개념을 주창해 오랜 기간 이어온 인간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생각들을 글에 담고 있다.

'분인'이란 한 인간이 여러 가지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개념이다. 작가는 자기계발서 류의 책에서 흔히 나오는 '진정한 자아'는 실체가 없을 뿐더러, 단 하나 뿐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도리어 한 개인이 지닌 수많은 모습, "분인이 모두 '진정한 나'다." 게이치로는 '분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자살과 연애, 직업을 관찰하고 있다.


지난 19일 저녁 7시 서울 홍대 인근 카페에서 100여명의 인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다. 3년 만에 방한한 게이치로의 얼굴은 조금 둥글어졌고, 눈빛은 순해졌다. 데뷔작 '일식'에 실린, 반항적으로 눈을 치켜뜬 젊은 시절의 사진과는 달랐다.


'분인'은 게이치로가 사회적 문제인 '자살'을 고민하는 동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겠지만, 왕따를 당해 자살하려고 했던 아이들을 만나보면 사실 학교가 싫지만 집이나 다른 그룹에서는 즐겁게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의 자아를 나누고 있었다"며 "아이들에게 원을 그려 그 속에 즐거운 모습이, 싫은 모습이 몇 퍼센트인지 나눠보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싫은 모습은 전체가 아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가는 최근 '분인'과 관련한 글과 책들을 세상에 내놓으며, 자살방지를 위한 강연도 하고 있다. 정신과의사들도 임상적으로 '분인' 개념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여성 독자분이 분인을 통해 마음정리를 하다 보니, 어머니와의 관계로 상처가 컸고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손목을 그어 죽으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 괴로웠던 탓이 컸단다. 사실 자살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경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여러 가지 자아가 있다면, 사실 동시다발적인 연애도 가능한 게 아니냐는 의견들도 나왔다. 게이치로는 "일반적으로 남녀가 1대1로 사랑하긴 하지만, 인류가 탄생한 후 불륜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며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봐르의 계약결혼처럼 분인 마다 다른 애인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합의하에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이러한 관용이 쉬워보이진 않았다. "물론 인간이란 동물은 질투심 많아서, 내 부인이 나도 모르는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면 굉장히 화가 날 것 같다."(웃음)


작가 스스로에게 즐거운 실감을 전달하는 '분인'은 무엇일까? 그는 "10대 때 시골에서 혼자 책을 많이 읽었다. 작가가 되면서 출판사 분들과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문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좋다. 소설 쓰는 나의 모습이 제일 좋기 때문"이라며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농담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 있으면 허무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싫은 분인'은? "어쩌다 SNS에서 나한테 시비조로 난폭하게 이야기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글부글 부아가 끌어올라 나도 모르게 답글을 써서 한 시간 이상 싸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한정된 인생인데 보람있는 분인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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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 발간된 소설 '던'은 2033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다. 그는 "한동안 과거를 무대로 한 작품을 써오다, 과거와 현재의 인과 관계 속에 갇혀버린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며 "이 소설은 미래를 통해 현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게이치로는 1998년 법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 첫 소설 '일식'을 투고한 후 이듬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일식', '달', '장송' 등 장편 삼부작에 이어 '센티멘털', '얼굴없는 나체들', '결괴' 등을 발표했다. 현재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연애에 관한 소설도 연재하고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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