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직물 같아야 진짜 복원" 전통금실 현장 가보니
[부여=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찌그덩~착! 찌그덩~착!" 길이 6m, 높이 4m 규모의 거대한 나무틀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하늘색 비단실과 금실이 씨줄날줄을 반복하며 천천히 원앙새를 그려간다. 0.3mm 금실을 반듯하게 놓아야 할 때면 직물을 짜는 이의 동작도 더 느려진다. 공중에선 틀 위에 앉아 원앙문(紋)에 맞게 수많은 실의 경사를 조율하는 이도 보인다. 둘이서 박자를 맞춰가며 길이 1.8cm 원앙무늬 스물일곱 개를 나란히 새기는 데까지는 무려 두 시간이 넘어간다. 다른 곳에서는 한지 위에 금박을 붙이고 펴서, 광을 내고, 둥근 칼로 정교하게 재단하는 '편금사'(扁金絲) 만들기 작업이 한창이다.
11일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섬유복원연구소에서 만난 장면들이다. 최근 연구소는 4년간의 고증을 거쳐 맥이 끊긴 '직금'(織金, 금실로 문양을 만든 직물) 기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직금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실과 귀족의 복식문화에서 화려함의 절정을 상징했다. 조선 영조 때에는 금실이 사치품으로 여겨져 문직기 사용이 금지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직금 복식은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기계가 대신해 금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전통 직금공예가 제대로 전수되지 못한 채 단절돼 버렸다. 또한 훼손된 옛 직금 유물을 복원하는 일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이번 복원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전통방식으로 금실을 만드는 것에서, 직금을 위해 사용했던 틀인 '문직기'(紋織機)와 원형이 훼손된 직금 유물 세 점을 복원하게 됐다. 이번 결과물은 연구소를 진두지휘한 심연옥 교수(여)와 그의 대학원생 제자들, 한지 장인 장용훈, 보존과학자 등 수 십 명이 참여해 일궈낸 쾌거였다. 심연옥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통섬유공예는 디자인과 색상 등 복식사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재료부터 복원해 원형의 직물을 찾아야 옛 복식 유물을 제대로 재현할 수 있다"며 "이번 복원은 우리의 직물사의 기반을 닦은 고(故) 민길자 선생과 그 뜻을 이어받은 직물사 연구자들 그리고 후배들이 3대에 걸쳐 이뤄낸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의 얘기처럼 금실의 구성요소와 비율, 직기(織機) 등의 복원에는 긴 시간동안의 과학적 고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특히 이번 연구를 통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금사를 만들 때 전통 한지가 배지(背紙, 맨 아래에 놓는 종이)로 사용된 것이 확인돼 당시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우리 고유의 독자적인 금사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은 주로 안피지, 중국은 상피지나 죽지를 배지로 이용했다.
직금 기술은 직물에 기품과 화려함을 불어넣어 예로부터 의례용 복식뿐만 아니라 장엄용(莊嚴用) 직물의 제작에도 폭넓게 사용돼 왔다. 특히 고려 시대에는 직금 공예가 발달해 다량의 불복장(佛腹藏, 사리를 비롯한 여러 물건을 불상 내부에 넣는 의식) 직금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조선 시대는 출토복식과 궁중복식 등에서 수준 높은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직금기술 복원을 계기로, 연구소는 보물 제1572호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1346년)의 복장 직물인 고려 시대 '남색원앙문직금능'(수덕사 근역성보관 소장)을 복원했다. 또한 조선시대 16세기 초 용인 영덕동 출토 장저고리에 사용된 '금원문직금능'을 분석해 금사와 은사를 넣어 짠 사실을 확인, 이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고, 조선시대 '연화문직금단' 1점을 추가로 재현했다.
심 교수는 "특히 고려시대 때는 원나라와 마찬가지로 직금직물이 크게 유행했다. 앞으로 복원해야할 유물들이 참 많다"며 "이외에도 조선시대 출토복식 중 직금 유물들과 함께 왕실어진에 댕기처럼 내려뜨린 '영락'과 사찰에서 장엄용 가마에 쓰였던 직금도 복원할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연구소는 앞으로 금박을 한지에 입혀 잘라 만든 '편금사' 외에도 편금사와 비단실을 함께 꼬아 만든 '연금사(撚金絲)' 기법 복원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체계적으로 섬유 문화재를 재현·복원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며 "전통 직금 복식분야의 활용뿐만 아니라 현대 공예와의 접목을 통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이와 관련 전승 교육을 통한 장인 육성과 지속적인 계승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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