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규항 "부모님, 진짜 자녀 친구 되고 싶나요"
'고래' 발행 10년…최근엔 '부모공부' 함께하기…"아이 위에 서려 하지 말고 불안을 공유하세요"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칼럼니스트이자 출판인, 이른바 진보 논객으로 한국 사회 곳곳의 불편한 모습을 들춰내온 김규항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잡지 '고래가 그랬어(이하 고래)'를 10년 넘게 펴내고 있다. 학습도서 위주의 아동서적 시장에서 '고래'는 어린이들이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이것은 우리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공감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이들을 승자독식 사회로 내몬 기성세대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해온 그는 최근에는 아이 교육에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해 '동병상련 부모공부'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갈 길 잃은' 교육 속에서 아이들에게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들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고래 발행인으로서의 10년간 그가 만난 한국의 어린이, 청소년들의 고민, 그리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들어봤다.
◆'고래'와의 10년= 처음 고래를 읽었던 어린이 독자들이 이제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성인이 됐다. 아직 학생 신분이거나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청년들이 고래를 후원하고 싶다고 찾아올 때마다 그는 미안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낀다. 고래를 읽으며 자란 친구들이 '어릴 때는 그냥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 같다'면서 고래 출판에 힘을 보태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는 "더 많은 아이들이 고래를 읽으며 자랐으면 좋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웃음) 그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고래는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채워져 있다. 그는 "이달의 추천 도서, ○○가 선정한 우수 도서 같은 것을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것은 시장에서 아이들의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주체가 어른이라는 데 그 원인이 있다"며 "고래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래를 읽으며 자란 아이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재단하는 일에서 아이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비단 입시경쟁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싼 가격으로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한다고 해서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렸던 N사의 패딩점퍼 열풍을 일례로 들었다. 패딩점퍼에 대한 자녀의 욕망은 옷에 대한 '고유의' 취향을 길러주지 못한 부모 책임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남들'에 가 있으니 남들이 가진 걸 소유하지 못했을 때 불안한 것인데, 이는 입시경쟁에 대한 부모의 불안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집단이 요구하는 가치 밖의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안목이 길러졌다면, 특정 패딩점퍼를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을 거다.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고유한 취향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다. 교육의 역할은 아이들이 하나의 트렌드에 실려가게끔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중2병'에 대한 가설=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가 한국의 중2들이 무서워서'라는 우스개가 있다. 김규항은 여기서 반문한다. "그러면 중2를 지나면 아이들이 보다 건강해지는가?"
"누구나 인간으로서 일정한 에너지와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것은 틀 안에 가둘 수 없이 저마다 고유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타고난 기운이 마치 컨베이어벨트 같은 교육 현실 속에서 '결정적으로 꺾이는' 순간 그것이 매우 거칠게 분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획일화된 시스템 안에 가둬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쓸 곳도 없고 쓸 방법도 모르는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쯤 되는 시기에 막무가내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교실이 중학교보다 겉보기에 '낫다'고 여겨지는 건 그 에너지조차 숨이 죽었기 때문이지, 본질적으로 아이들의 사고가 건강해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라고 했다. '카톡'을 하루에 수백 개씩 주고받지만 그 내용은 '짜증나' 아니면 욕설이 거의 전부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쟁하는 상품'으로 길러지는 모든 아이들이 품고 있는 위기다.
◆'일베'는 누가 만들어냈는가= 그를 만난 날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친구를 '어묵'에 빗대며 조롱하는 사진이 '일베' 게시판에 올라온 것이다. '도를 넘었다'는 비난과 함께 네티즌의 분노가 쏟아졌다. 김규항은 "일베 논란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들을 마치 극우 보수층이 만들어낸 괴물인 양 취급해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일베가 '말로만 진보적 가치를 운운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으로 태어났다고 분석한다.
"한국 사회의 진보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공연히 '반감'을 갖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만들어낸 한 축이면서도 모든 책임을 보수에 돌리며 그들을 비난하고 무시하니까. 아이들이 가지는 반감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을 승자독식 사회로 만들어놓고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면서 지식과 가치만 늘어놓는 어른들이 싫은 거다. 그에 대한 반감의 파행적 표출이 일베다."
인터뷰 당일 아침에 그는 새롭게 집필할 책의 제목으로 문득 '진열된 악(惡)'이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보수든 진보든 '욕할 대상'을 진열해놓고 이를 향해 한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산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사회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부모는 神이 아니다= 그의 두 자녀가 공교육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그는 오해를 받아왔다. 부모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있어 자녀에게 이러한 생각이 주입됐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큰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입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김규항이 초등학생 딸에게 입시 얘기를 했다고 말하면, 어린애를 놓고 '미대 입시교육의 폐해'를 얘기했을 거라고들 짐작한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가 딸에게 알려준 것은 '진짜 세상'에 대한 정보다.
"딸에게 '네가 10년 뒤 서울대 미대나 홍대 미대를 갔을 때 무엇을 선택할 수 있으며 가지 않았을 때는 무엇을 선택할 수 없는지' 알려줬다. 현실을 알려주지도 않고 부모 가치대로 입시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도 폭력이 아닌가. 이걸 어릴 때부터 얘기한 이유는, 나중에 고등학생쯤 되면 이미 '불안'에 짓눌려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 계속 정보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과연 오늘과 같은 현실에서 부모가 아이보다 특별한 용기나 묘안이 있겠느냐"며 "아이와 서로 존경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고민과 불안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의 위에 서려고 하거나 다 책임지려 하지 말고 마음을 '나누려고' 노력하면, 아이와 친구처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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