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의 역설'…관계형금융 실적 '붐'
은행들 꾸준히 조직 정비해 기업 발굴, 수백억원대 실적 내기도
기존 대출 관행 개선 효과…외부 전문가 충원 등 장기 투자 나서야
[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금융당국의 압박이 사실상 사라졌음에도 관계형금융이 예상 외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이 '관계형금융'을 들고나오자 은행권에서는 불만부터 터져나왔다. 금융위원회가 '기술금융'을 주문한 지 채 반년도 안 된 상황에서 당국의 정권 발맞추기가 지나치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에 금감원은 한 발 물러서 실적 비공개를 약속했고 은행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시중은행들은 능동적으로 내부 컨설팅 조직을 활용해 숨어있는 거래기업을 발굴해 냈고, 일부는 수백억대의 실적을 내고 있다. 당국이 매달 실적을 공개하는 기술금융이 '거품 실적'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과는 비교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은 두 달 간 각각 344억원(125건), 227억원(42건)의 관계형금융 실적을 기록했다. 떠들썩한 홍보활동을 벌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상당히 좋은 성적을 낸 셈이다. 이는 도입 초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은행들도 당국의 실적공개 압박에서 벗어나면서 대출관행을 개선하고 기업고객을 확보할 기회로 보는 등 긍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영향이 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관계형금융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기업은 많이 나올 수가 없어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기로 약속을 했다"며 "대출 관행 개선이라는 애초 취지에 맞게끔 시중은행들과 애로점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기업금융부 부장은 "관계형금융이 아직 거래기업이 많지 않은 은행들에게는 장기고객을 확보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기업의 발전가능성을 본 장기투자로 보고 당분간은 실적에 연연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지난 두달간 관계형금융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조직을 정비해 왔다. 관계형금융에 필수적인 컨설팅 조직을 만들고, 연성정보를 전산화해 여신에 반영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사전 마케팅 제도를 활용해 기업과 거래를 맺었고, 지분투자에 대해서는 전담인력을 따로 두고 올해 내로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KB국민은행은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컨설팅팀을 구성해 관계형금융 지원기업에 경영 컨설팅과 가업승계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또 업무지침을 제정해 연성정보심사표와 체크리스트를 전산화했다.
신한은행 역시 기업금융부내 기업컨설팅 조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재무ㆍ세무ㆍ경영ㆍ금융 등 각 분야에서 기업경영을 진단한다. 시행시기에 맞춰 기업여신 업무기준과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에도 관계형금융을 반영했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IBK컨설팅센터와 함께 관계형금융을 추진하고 있다. IBK컨설팅센터는 70여명의 전문인력이 이미 수천개의 기업에 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해 온 만큼 관계형금융에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NH농협은행은 일선 영업점에서 관계형금융이 신청되면 기업고객부내 기업컨설팅 조직이 직접 기업에 나가 경영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연성정보를 수집한다.
하지만 관계형금융이 대출관행을 성공적으로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은행내에 자리를 잡기에는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은행들이 기존 기업금융업무에서 경성정보에 근거해 신용등급과 한도를 매겨온 만큼 연성정보로 여신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기업금융부 관계자는 "관계형금융은 독일이나 일본에서 보듯 소규모의 은행들이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나온 전략이다. 대형은행들은 3년 내외에서 인사이동을 해야 하는데 장기적인 정보수집과 축적이 어렵고 기존의 거래형금융 관행과 병행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3년이상의 장기대출과 지분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여전히 남아있다. 시중은행 중소기업지원부 관계자는 "단기자금이 필요한 법인들이 꽤 많은데 3년 이상 장기대출만 가능해 업체 쪽에서도 선호하지 않고 있다"며 "업종이나 대출조건이 일반적 중소기업대출보다 상대적으로 까다로워 메리트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관계형금융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은행권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기업대출이 신용위험도가 높아지고 있어 시중은행들도 중소기업이나 소호대출로 방향을 트는 추세에서 기존의 거래형금융으로 중소기업금융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관계형금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외부 전문가를 충원하고 중소기업 대상 컨설팅을 전문화 하는 등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계형금융=은행이 기업과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기업의 연성정보를 활용해 여신지원, 지분투자, 경영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대상기업은 산업효과가 큰 제조ㆍ정보통신(IT)업체로 제한됐다. 관계형금융은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는 부족하지만, 사업전망이 우수한 중소기업에 비계량적(연성) 정보를 활용해 운전ㆍ시설자금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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