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유서 내용은?
'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유서 내용은?
[아시아경제 온라인이슈팀] 10일 밤 방송된 SBS 교양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갑질 논란'과는 정반대의 사례가 공개돼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최근 '갑질'로 논란이 된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등을 전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의 경영을 모범사례로 언급했다. 세상에 공개된 그의 유언장은 사회에 귀감이 됐다.
"첫째, 손녀 유일림(아들 일선씨의 딸)에게는 대학 졸업시까지 학자금 1만달러를 준다. 둘째, 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의 땅 5000평을 준다. 이 땅은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동산으로 꾸며라. 셋째, 내 소유주식 전부는 교육원조신탁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이같은 내용의 유언장을 남긴 유일한 박사는 세간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사업가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민족자본을 축적해 이 사회에 기여할 길을 계속 찾아 실천해 왔다.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평양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국권 침탈의 시대 속에서 아들을 '민족을 살릴 큰 인물'로 키우고자 아내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유 박사는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고학으로 미시간주립대에서 학사학위를, 캘리포니아대에서 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스탠퍼드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미국 생활 초기, 3년여 간의 네브래스카 한인소년병학교 시절에 싹튼 민족의식은 이후 독립운동의 원천이자 기업 경영의 지표로도 작용했다. 대학졸업 후 잠시 제너럴일렉트릭에 입사했지만 힘없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 밖에 없다는 생각에 대학동창과 함께 숙주나물 통조림 업체인 라초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를 운영하며 어느 정도 사업자금이 마련되자 유 박사는 1926년 고국으로 향했다. 당시의 열악한 의료상황을 지켜보며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39년엔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했고, 69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는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그 이유에 대해 전 유한양행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회사 조직에 친척이 있으면 파벌이 형성되고 회사발전에 지장이 있으니 내가 살아있을 때 친척 되는 사람은 다 내보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친척이 되는 사람들은 다 내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유일한 박사는 당시 정치자금 압박에 굴하지 않아 세무감찰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일한 박사는 국민들에게 쓰일 귀한 돈이라며 원칙대로 세금을 모두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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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한양행 세무조사를 맡은 감찰팀장은 "20일간 세무조사를 했지만 꼬투리 잡을 것이 없더라. 털어도 먼지 안 나오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편 딸 재라씨는 지난 1991년 63세로 타계하며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에 자신의 전 재산을 더한 205억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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