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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어른들의 수학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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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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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까지 12년간 대통령으로 핀란드를 이끌었던 타르야 할로넨이 2002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일이 있다. 호텔방에서 직접 다림질을 하는 모습이 공개됐던 것인데 한국인들은 그 소탈한 모습에 무척 놀라워했다. 그러나 북유럽 나라들에서는 이런 모습이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다. 스웨덴에서 살다온 한 지인도 비슷한 경험담을 얘기해줬다. 이웃집 가족들과 어울리면서 그 집 주부와도 자주 만났는데 평소 수더분한 옷차림이나 얘기하는 게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 알고 보니 장관이었다는 것이다.

북유럽 사회의 탈권위와 유연성을 보여주는 얘기들인데 여기에 북유럽 국가들이 왜 살기 좋은 사회로 주목을 받는지 그 근원과 이유의 일면이 있는 듯하다. 어떤 직위나 직책, 권력, 재산이 '신분'이 돼 버리지 않는 유연성이랄 수 있는데, 그 유연성은 북유럽 사회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비경직적 사회 분위기가 높은 삶의 질을 낳고 높은 삶의 질이 다시 비경직성의 바탕이 되고 촉진시키는 선순환이 있는 것이다.
지난주 영국의 한 싱크탱크가 발표한 '세계 번영지수' 순위에서 북유럽 나라들이 나란히 최상위 순위에 오른 것에도 아마 이런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6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뽑힌 노르웨이는 물론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가 모두 8위 이내의 순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 나라들의 인구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적게는 460만명에서 많아 봐야 900여만명의 소국들이다. 강대국이 아닌지 모르지만 강국이라고는 할 수 있을 듯한데 그렇다면 강국이란 결코 그 인구 규모에 있지 않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 한 사회를 인구 숫자뿐만 아닌 총체적인 용량으로 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체로 그 사회의 개개인이 저마다의 잠재력을 얼마나 잘 발휘하고 가능성을 실현하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총량이 결정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지금 출산율을 높이려고 하는 한국이 생각해야 할 점일 것이다. 그러나 어제 이른바 '싱글세' 소동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얕은 인식을 보여준다. 농담이라고 얼버무렸지만 농담이라고 해도 그 농담 속에는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의 우리사회에 대한 얕은 인식이 드러나 있다. 그들에게선 한국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음주가무를 즐기던 낙천적인 민족이 왜 세계 최고 자살률을 보이는지, 인구 규모와 함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 나라가 강해지는 것은 결국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이들이 '만개(滿開)'하도록 하는 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곧 인구를 질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것이 내부의 심화를 통한 인구 늘리기라고 한다면 외부로 확장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중 가장 실현 가능한 방법은 북한과 함께 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거꾸로 가고 있거나 최소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동아시아 상황에서 활로를 찾아야 할 한국은 일본이 북한과 접근해서 한ㆍ미ㆍ일 삼각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동북아 외교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남북 분단을 더욱 깊은 단절관계로 만들고 있다.

오늘은 수학능력시험일이다. 아이들에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수학능력을 물어보는 날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게게 더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어른들이 봐야 하는 시험일 듯하다. 수능 시험에서는 교과통합형, 복합적인 사고능력을 묻는 문제들이 많이 출제된다고 하는데 어른들에게부터 그런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지를 묻는 시험을 보게 해야 할 듯하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이들부터 이 사회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아는지 그 수학능력시험을, 우리 사회를 이끌 역량이 있는지 그 경영능력시험을 치르게 해야 할 듯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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