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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시진핑 열전] 일본, 미국을 넘보는 경제대국에서 버블경제로 추락

최종수정 2014.09.23 17:06 기사입력 2014.09.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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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격동 한국외교의 Key-man 아베 & 시진핑] 아베 신조가 자라온 일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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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일본의 군사력을 지탱하는 경제적 기초인 공업시설을 파괴하고 재건을 불허한다. 일본인의 생활수준은 그들이 침략한 아시아 각국의 생활수준보다 높지 않도록 한다."

1945년 9월22일 미국 국무성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항복 후 미국의 초기 대일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해 다시금 군사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일본의 생산시설을 필리핀 등 침략 피해당사국으로 이전하고 주일 미군의 주둔에 필요한 막대한 경비를 일본 정부에 부과해 엄청난 재정 부담을 떠넘기기도 했다. 1946년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주둔경비는 379억엔, 이는 일본 일반 회계예산의 32%에 달했다. 전쟁에서 진 일본은 이 같은 압박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연합군의 점령하에 놓인 일본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냉전은 일본에 기회를 안겨줬다. 1948년 미국과 소련의 대결구도가 분명해짐에 따라 일본의 운명은 달라졌다. 미국 입장에서 소련을 막는 방파제로 일본을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일본'은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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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부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일본 총리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하늘이 우리를 도왔다"고 말했다. 연합국이 전쟁에 쓰이는 물자와 서비스 등을 일본에서 조달함에 따라 일본은 한국전쟁특수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일본 외무성 조사에 따르면 1950년 일본 외화수입 가운데 한국전쟁특수가 차지한 비율은 14.8%, 1951년에는 26.4%, 1952년에는 36.8%였다. 이 덕택에 일본은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52년에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경제규모로 복귀했다.

훗날 일본 총리가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일본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1954년에 태어났다. 그가 보냈던 어린 시절, 일본은 패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시기였다. 1955년 거대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에 의해 창당되면서 전후 일본의 정치적 안정을 가져온 55년 체제가 완성됐다.
기시의 주도로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안보 불안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개발에 매진했다. 안보조약 논란으로 총리직을 사임한 기시에 이어 총리가 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는 '소득배증계획'(10년내 국민소득을 두 배로 만드는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기시의 친동생이자 아베의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이케다의 뒤를 이어 역대 최장수(7년) 총리직을 맡으며 경제 성장과 함께 한일협정, 오키나와 반환 등을 마무리했다.

기시-이케다-사토로 이어지는 관료출신 총리는 일본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중앙은행(BOJ)과 통상산업성(통산성)을 중심으로 한 정부 주도의 중공업 육성 정책은 개방경제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외국 자본의 침투를 막아내며 일본의 수출을 빠르게 증가시켰다.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덕분에 일본은 선박, 철강 생산에서 세계 1위로 뛰어올랐다. 1960년대 40억달러 수준이었던 일본의 수출은 1965년에 84억달러로 두 배 이상 오른데 이어 1970년에는 193억달러를 넘어섰다. 1968년 일본은 독일을 제치고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 방식은 관 주도 방식이었다. 통산성이 구체적인 전략산업을 정하면 정부가 나서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도록 전략산업을 구조조정하는 형식의 산업정책을 취했다. 이를 위해 관료들은 기업들에 조세감면, 정책금융 등의 당근과 행정명령, 법률, 규제 등의 채찍 등을 쏟아부었다. 이 같은 관료 주도의 산업화 정책은 자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의 지지를 받으며 강력히 추진됐다.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일본의 대기업들이 전략 산업에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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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봉착한 경제성장= 1970년대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일본의 성공 신화는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겉으로는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 고도성장을 지원했던 자민당은 높은 인플레이션, 성장 둔화 등으로 그동안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집단들이 경제 성장 정책에 반발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보수 세력의 연합만으로는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자민당은 그동안의 친기업적인 정책 노선 대신 포괄정당(catch all party) 노선을 채택한다.

관 주도의 성장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그동안 일본 경제 성장을 주도한 통산성과 대장성의 산업통제 정책 역시 금융시장의 발전과 기업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힘을 잃게 됐다. 은행 대출을 움켜쥐고 기업들의 투자를 관리했던 일본 정부는 과거와 같은 산업통제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선진국들이 겪었던 중복 과잉 투자 등의 문제는 일본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게 됐다.

일본에 대한 외국의 견제도 거세졌다. 미국 등은 일본이 인위적으로 낮은 환율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며 엔화 가치를 평가 절상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따라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선진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엔화 환율을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1980년대 1달러당 260엔 수준이었던 엔화는 1달러당 79엔으로 급상승했다. 엔화 가치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수출 부진과 그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한 일본 정부는 금리를 급격히 낮췄다. 하지만 이 같은 유동성 증가 정책은 부동산 가격과 주식시장의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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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을 맞다= 1989년 일본의 대기업 미쓰비시 부동산이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록펠러센터를 사들이고, 소니가 미국의 대표적 영화사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는 등 일본 경제는 세계를 삼키는 듯했다. 겉보기에는 일본 경제의 최전성기였지만 속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일본 경제가 거품경제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주식과 부동산의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1989년 재할인율 인상을 시작으로 전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부동산 담보대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내놓는다. 거품경제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는 결국 거품경제 붕괴를 촉발했다. 주가와 땅값이 폭락하고 은행들은 대규모 부실채권 문제를 떠안게 된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이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만을 기록하며 일본의 취약점인 재정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장기불황의 이면에는 환부를 드러내 수술을 하기보다는 땜질식 처방만을 내놓았던 일본 정치권과 관료의 무능력이 있었다.

엔고 환경은 다른 측면에서 일본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갔다. 엔화 평가 절상으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일본 기업들은 급격히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자연히 일본에서는 산업공동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실업률 증가와 임금감소, 소비 억제 등 경제 불황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해로 꼽히는 1991년은 아베에게도 특별한 해였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를 배웠던 아베는 이제 아버지를 대신해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냉전의 축복 속에 성장했던 일본은 소련의 붕괴(1991년)와 함께 찾아온 탈냉전시기를 잃어버린 20년과 함께 보내게 됐다. '주식회사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등장으로 잠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다시금 흔들렸다.

전후 잿더미 속에서 급속도로 회복했던 일본에서 아베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성인이 돼 정치에 투신했을 때에는 이미 속으로 병든 일본의 환부를 수술하는 데 몰두했다. 2012년 12월 총리가 된 아베는 일본의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엔저를 기반으로 한 '아베노믹스'를 내걸고 일본 경제의 새출발을 시도하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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