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 10일 개봉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랄프 스테드먼이 붓을 든 이유는 거창하다. "그림을 무기 삼아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1960년대 베트남전 당시에는 미국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그림을 그렸고, 가난으로 굶주려가는 지구 반대편 아이들을 상징하는 그림도 그렸다. 걸프전 당시 그가 그린 '워 버거(War Burger)'란 작품에선 사람의 시체가 패티로 들어간 햄버거를 누군가가 입을 크게 벌린 채 먹으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밝고 아름다운 대신 그로테스크하고 과장돼있다. 따뜻한 대신 신랄하고, 매끄러운 대신 날카롭다.
영화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은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지금까지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랄프 스테드먼의 작업실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배우 조니 뎁이 관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선다. 무엇보다 랄프 스테드먼이 즉석에서 물감을 흩뿌려 순식간에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드는 장면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의 유명 작품들과 미공개 습작도 보너스로 감상할 수 있으며,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살아 움직이게 만든 감독의 솜씨도 놀랍다.
랄프가 그의 이름을 더욱 알리게 된 계기는 저널리스트 헌터 S. 톰슨과의 작업을 통해서다. 1970년대 당시 미국 3대 경마대회인 켄터키 더비 취재를 준비 중이던 헌터는 랄프에게 카투니스트로 합류하길 권한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작품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는 20세기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들은 취재 대상에 대한 주관적 개입을 강조하는 '곤조(Gonzo) 저널리즘'의 창시자로도 평가받게 된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는 1998년에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주인공이 바로 조니 뎁이었다. 이 때의 인연으로 헌터가 2005년 권총 자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조니 뎁이 그의 장례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조니 뎁과 랄프는 두 사람을 이어주었던 헌터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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