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을 직접 고쳐보겠다며 몇 달을 끌다가 드디어 새 걸로 바꿔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을 자축하며 세면대에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뿌듯하게 지켜볼 새도 없이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부터 배수가 시원찮았던 욕실 하수구가 완전히 막혀 물이 아예 빠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뜻밖의 난관 앞에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감, 그리고 수도꼭지를 이미 스스로 수리한 데서 얻은 자신감이 내 머리와 팔을 '선동'했다.
한편 다음 순간 찾아온 것은 지난 5년간 살았던 집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아니 지금껏 내가 거쳐갔던 그 많은 집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추궁이었다.
그러므로 그 순간 내 몸을 범벅으로 만들었던 땀은 집에 깃든 성령이 베풀어준, 집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라는 세례였다. 그 세례로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욕실에 드나들 때, 세면대의 물을 틀면서, 바닥의 물이 빠져 나갈 때 그걸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지는 그 날 이전과 이후로 바뀐 듯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아마도 진정한 '가장(家長)', 그러니까 아내와 아이들만이 아니라 집을 움직이는 만물이 함께 동거하는 집의 진짜 가장이 되는 데 조금은 더 다가섰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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