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실패사례가 '선진화법'이다. 19대 국회는 해마다 쟁점 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두고 되풀이 해 온 여야의 물리적 충돌 방지를 위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선진화법을 제정했다. 국회는 이 법이 국회 개혁과 의회 민주주의의 진일보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선진화법은 제정 2년도 안 돼 개정 위기에 놓였다. 법안 처리 지연의 원죄, 식물 국회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면서다. 새누리당은 법 개정을 추진 중이고 제정 당시 반대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공언한 상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전반기 국회 대표 불량 상임위원회로 낙인 찍힌 가장 큰 원인도 '합의사항 불이행'이었다. 야당 소속 미방위원들은 최대 쟁점인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2월 국회에서 여야 간사가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면 된다"는 논리로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새누리당도 "야당이 매번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고 불만을 쏟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는 "합의된 일정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 토대 위에 (법안 처리를 위한) 합의를 이뤄내는 게 더 중요한 데 그게 안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더기법 양산' 관행도 시급한 개선 과제다. 당 지도부와의 협의를 통해 법안을 제출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개별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자유로워지고 다양한 민생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고 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법안의 경우 여야 할 것 없이 여러 의원이 관련 법안을 제출하면서 법안 심의과정에서 '누더기'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정부의 중점법안 처리 시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끼워 함께 처리하는 이른바 '빅딜'도 관례화 된 지 오래다. 때문에 국회의 법안 처리 직후에는 '핵심 조항'이 빠진 '누더기법'을 통과시켰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법안 한건주의'도 고쳐야 할 병폐다. 해마다 개별 의원들의 법안 발의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국회를 통과하는 법안은 줄고 있다. 의원들이 법안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치밀한 준비보다는 입법 실적을 쌓기 위한 '한건주의'에 만연돼 있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특정 현안이 터지면 그 이름을 딴 법안들이 경쟁적으로 발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의 다른 관계자는 "요즘은 신문에 이슈가 터지면 우선 국회 입법조사처에 법안부터 찜해놓는 게 일"이라며 "구체적인 법안 내용에 대한 고민은 그 이후에나 진행한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단순히 국회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시민단체에서 입법 실적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기 때문에 폐기된 법안을 다시 살리거나 청부 입법 등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은석 기자 cha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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