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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적폐가 전봇대 뽑듯 사라지진 않는다

최종수정 2020.02.01 23:06 기사입력 2014.06.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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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에서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질타한 적이 있었다. 10m 높이의 전봇대 때문에 20~30m 높이의 트레일러들이 도로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트레일러들이 통과할 때는 전선을 절단했다가 통과 후 다시 연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당선자는 개탄했다. 이 전봇대는 불필요한 정부 규제의 상징으로 비난받았고, 3일 후 한국전력은 비가 오는 가운데 감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사를 강행, 두 개를 철거했다.

그 직후 비난의 표적이었던 산업자원부 사무관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무관의 설명은 전혀 달랐다. 그는 전봇대 때문에 트레일러의 통행이 방해받는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이 전혀 달랐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1997년 8월 준공된 대불공단은 42%대의 낮은 분양율에 허덕이고 있었다. 15개 블록 대부분이 4만평에서 20만평까지 광필지로 조성돼 부지 수요가 많은 5000평 미만의 중소기업 입주는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이 문제는 1980년대 말 한국토지공사가 공단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수요를 잘못 예측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대불공단은 전봇대뿐 아니라 도로, 다리의 하중에서 트럭의 회전 각도에 이르기까지 대형 트레일러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조성됐다. 공단 내 업체들의 생산품은 통상 트럭이나 컨테이너로 운반되며 도로법상 적재 높이가 한정돼 있어 전봇대 높이 13m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전봇대 문제는 추가 모집으로 입주한 업체 때문에 발생했다. 입주업체 지원율이 저조하자 관리위원회는 부랴부랴 추가 모집을 강행했고, 그 과정에서 입주해서는 안 되는 선박용 대형 블럭 제조업체가 입주한 것이다.
왜 처음에 고려하지 않았던 선박 블럭 제조업체가 입주했을까. 토지공사나 공단 관리위원회가 낮은 입주률에 대한 문책을 두려워해 아무 업체나 입주시켰으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하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은 전봇대가 아니라 반대로 트레일러였다. 애초에 트레일러가 다니면 안 되는 도로를 억지로 다니면서 애꿎은 전봇대만 마녀사냥을 당한 꼴이 된 것이다.

더구나 사후약방문 격이나마 대형 트레일러가 통과하려면 전봇대 제거뿐 아니라 전선 지하매설, 도로 확장, 하중에 견딜 수 있는 교량공사 등을 다시 해야 한다. 단지 전봇대 몇 개 제거가 아닌 공단의 도로 주변을 재시공할 정도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 공사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도 불분명했다. 이런 문제의 복잡성 때문에 5년간의 이명박 정부가 끝난 지금까지 당시 뽑은 두 개의 전봇대 외에 다른 전봇대들은 모두 '무사(?)' 하다고 한다.

세상사에 단 칼로 무 자르듯 되는 일은 없다. 문제는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어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전봇대 사건'만 해도 아무도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단지 관료들의 무능과 보신주의만을 규탄하고, 전봇대 두 개 뽑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갔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봇대 두 개가 아니라 공단의 조성에서부터 낮은 입주율, 부적절한 입주업체 선정 등이 구조적으로 얽혀 있었다.

지금 유병언을 체포하고 '관피아'를 척결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는 듯이 요란스럽다. 하지만 세월호의 비극 역시 많은 원인들이 구조적으로 얽혀 있었다.

이제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노후 선박은 왜 수입해야 하는지, 선박이나 차량의 안전 검사가 왜 방치되고 있는지, 퇴직관료와 민간기업의 유착을 어떻게 차단해야 할지 등등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문제는 너무도 많다.

다시 5년이 지난 후 여전히 다른 '전봇대'들이 무사하다면, 아니 건재해서 활보하고 있다면 이건 코미디가 아니라 '피눈물 나는 비극'이지 않은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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